박재형 작
11월은 계절이 오가는 길목이다.
그냥 가기엔 서운하기에 떠나기 전에 만나야 한다.
머물 수 없는 기다림, 잊지는 않는다고,
떠나기 전에 전해야 한다.
텅빈 벌판에 일렁이는 바람, 묻어오는 향기는
꿈인 듯...
그대 모습, 지난 시간을 바라보는 두눈엔
이별 담긴 눈물만 흘러내린다.
기웃거리다 떠나버린 가을,
허무처럼 찾아오는 알길없는 외로움,
눈꽃에 묻여 내리면 먼저 내달리는 그리움,
머뭇거리다 지워지는 기억처럼 그렇게 가버린다.
11월!
세월의 깊이 만큼 토닥토닥 다듬어진 듯
구순해 보이고 편안함을 간직한 여인처럼......
여유로움이 묻어있어 아름다워 보이는 시간이다.
그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들,
어느날 문득 발견한 나!
중년의 낯선 모습에 새삼 허무해져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어느새 검은 머리는
윤기없이 거칠어지고 초점은 흐릿하게 겹쳐오면서
살아온 세월이 허무해 진다.
그동안 발목 잡혀온 현실이 억울하기도 하고,
나를 찾고자 하염없이 방황하던 세월......
현실을 잊고 싶어 무작정 떠나고 싶다.
되돌릴 수 없는 젊은 날의 아쉬움인가?
사춘기 소녀처럼 여려진 가슴은 눈망울에
가득 고이는 그렁그렁한 눈물,
지난 삶에 연연하며 자신감을 잃어 체념하는
허물어진 내가 아니라 연두빛도 푸른빛도 아니지만
갈색과 검붉은 색으로 내마음을 채색하여
세월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검은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브릿지처럼 썩인 얼굴,
하얀 누비 두루마기에 누렇고 짧은
여우털 목도리를 두른, 품위있고 멋스러움이......
그래서 지나간 푸른 시간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으로 물들어 내 가슴에 11월을 담습니다.
<구순하다 : 서로 사귀거나 지내는 데 사이가 좋아 화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