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인격·사상·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함”... ‘존경’(尊敬)의 사전적 의미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존경’하면, 그 사람을 본 받아 실천하려 한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하질 않나.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 이렇게 그에게 최고의 존경을 표시한 말씀은 이미 4년 전에 있었다. 또한 지난 현충일에도 이 나라 ‘국민의 군대’ 창설의 뿌리라고 언급하여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그 ‘김원봉’은 북녘 정권 수립의 공신(功臣)일뿐만 아니라, 그 후 노동상(勞動相), 국가 검열상(檢閱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고위직을 누렸다. 그의 1945년 8월 15일 이전(以前) 활동은 순수한 민족의 해방이나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추구해 온 붉은 이데올로기를 이 땅에 실현시키려는 과정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나라 ‘국민’들의 견해는 그렇다.
여기서 잠시...
‘남’이 존경한다는 인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존경’은 이어진다.
“1·2부는, 누구도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시기에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고했다. 3부는 그 예고가 그대로 실현된 것을 현실 속에서 확인하면서 결산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글 속에서나마 진실의 승리를 확인하면서, 읽는 나 자신도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운명’이라는 제목의 자서전(自敍傳)에서 일부 인용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 자서전의 작가, 즉 후일에 ‘북악(北岳) 산장’ 세입자께서 ‘존경하는 분’이 두 명 등장한다.
우선, 위의 자서전 작가가 읽은 「베트남 전쟁」 논문을 썼던 ‘리영희’이다. 적지 않은 ‘백성’과 ‘인민’들이 ‘선생’(先生)이라고 부르는데, 먼저 탯줄 끊긴 거 외에는 글쎄...
그 자서전의 작가는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리영희’ 선생...”이라고 했었다. “자유월남의 패망은 진실의 승리”라는 식으로 설파했던 그 ‘리영희’는 ‘5·18 묘역’에 묻혀있단다. 이어서...

“30년간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검소한 생활로 국민들과 함께 살고 국부로 추앙받는 점, 베트남 뿐 아니라 전 인류를 통틀어서도 위대한 분...”
지난해 3월, 공산월남의 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의 생전(生前) 거소(居所)를 둘러보며 지껄이신 말씀이다. 그 월남전(越南戰)에서 이 나라 ‘국민의 군대’는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수호를 위해 피를 흘렸다. 맹호·백마·청룡·비둘기...
또 다른 ‘선생’(先生)들이 등장한다.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은 겨울철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것을 정겹게 일컬어 ‘원시적 우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1월 평창 동계올림픽 리셉션 자리에서의 말씀이다. 북녘에서 내려온 손님들(?)을 앞에 놓고 거침없이 뱉었다. 그 ‘신영복’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북녘 수괴(首魁)가 ‘남조선 혁명의 참모부’라고 여겼던 「통일혁명당」의 핵심이었다. 그가 가막소에 있을 때 ‘백도혈통’(百盜血統)의 원조가 북녘으로 모셔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윤이상은 ‘20세기를 이끈 음악인 20명’ 중 유일한 동양인... 많은 사람들의 존경 속에 악보 위의 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그였지만 한반도를 가른 분단의 선만큼은 끝내 넘지 못했다”
그 음악가가 탯줄을 끊긴지 100년이 되는 날을 맞아 ‘북악(北岳) 산장’ 세입자께서 2017년 9월에 남겼던 추모 글 중의 일부란다. 세입자의 부인께서는 독일에 가신 길에 그 음악가의 묘지를 직접 참배했고, 동백나무 기념식수(紀念植樹)까지 하셨다.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서”라며...
그 음악가도 간첩사건에 연루됐고, 마누라와 함께 북녘을 오가며 ‘백도혈통’(百盜血統) 찬양하는 짓거리를 땅에 묻히고야 멈췄다고 한다.
이렇듯 ‘존경하는 분’들의 면면도 다양하고, 그 사연 또한 절절하기가 ‘장화홍련전’을 넘어선다. 물론 이 나라 ‘국민’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존경하는 분’들의 공통점까지도 포함해서...
그런데 며칠 전에 ‘존경하는 분’이 하나 더 추가됐다는 소식이 저 왜국(倭國)에서 들려왔다.

“G-20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재일교포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던 재일교포 서승씨를 초대한 자리에서 ‘존경하는 서승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재일(在日) 간첩단 사건 연루자들을 민주화 유공자라고 부르고, 국가를 대표해서 사과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예상된다...”
추가로 자세한 내용은 본보[리버티코리아포스트]의 ‘文, 간첩단 사건 연루자에 “존경하는 서승 선생님...” 망언’ 제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왜 이런 일들이 연속될까? 이런 걸 ‘우문’(愚問), 즉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한단다. ‘현답’(賢答)은 잠시 접어두고, 직설적으로 뱉어보자. 저들 ‘존경하는 분(糞)’들의 전체적인 공통점은, 배워 처먹지 못한 ‘국민’들에게야 그저 ‘빨갱이’들이 아닌가. 또한 ‘간첩’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가 그렇더라도 ‘빨갱이’라는 저속한(?), 그 누군가가 강조하신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의 표현을 공공의 언론에서 마구 쓰기는 좀 거시기하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고상한 표현은 어떨지... 여생(餘生)을 보내고 계실 분(糞)도 세월이 지나면 마찬가지겠지만, 일단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분(糞)들에 한해서다.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잘 한 일은 죽은 것 뿐’인 분(糞)들...”
이에 더하여, 누군가를 ‘존경’하게 되면 본 받아 실천하려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부분에 주목해 보자. 그러면...
최근 이 나라에서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근원과 본질을 미루어 짐작, 아니 확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특히 중요한 점은... 그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다는 거다.
아하! ‘해법’은 ‘국민’들 모두가 진즉부터 꿰고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