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4
<수필> 산책길에서
박재형 작 우리 동네 호수공원을 산책하다 호수를 바라보며 무심히 생각에 잠겨 걷고 있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몇 번인가 발 끝에 밟히고, 소매 끝에 스치는 인연이 닿기도 하고, 돌부리에 걸려 몇 번인가 넘어지기도 하고, 몇 번인가는 발 끝에 채이기도 하면서 걸어간다. 그러다 보면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가슴 한쪽에 훵하니 가을 같은 바람만 스치운다. 숨소리조차 들리는 오솔길을 홀로 걸으며 숲속 벤치에 앉아 바스락 낙엽이 구르는 소리에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명상에 잠기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숲이 그냥 내게로 온다. 구름이 내게로 오고, 그리움도 내게로 온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겨우내 마른가지에 싹이 움트던 지난 봄,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던 빗소리. 내리쬐던 불볕도 마다 않고 지켜내던 지난 여름, 내 안의 상처를 감싸안은 시원한 강바람. 자기의 모든 열정을 태워 열매를 맺는 가을, 추억을 흔들던 억새풀과 노을빛. 이렇게 하늘이 높은 가을날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낙엽에 담아 내게 보내 준다면 그래서 내가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을 타는 냄새를 좋아하는 당신, 가을 바람이 날 당신에게 데려다 준다면 가을을 잔에 타서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