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눈에 띈다. 유승민, 유의동, 김웅, 주호영, 원유철, 장제원, 김용태 등등... 이 외에 젊음을 뽐내는 여럿 정치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묘역에서 “통합당이 5·18 왜곡·비난에 단호한 조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말 아쉽다... 진심을 담아 그런 부분에 사죄드린다...” 등의 매우 감동·감격적(?)인 멘트들을 날리셨다고 한다.
정치적인 신념에서 우러나온 소신(所信)인 듯하니 크게 시비할 바는 못 된다고 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난 총선 결과에 대해 저들 무리들, 특히 ‘젊음을 뽐내는’ 군상들은 최근 그 무슨 ‘개혁’입네 ‘세대교체’네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단다.
“과거 보수 정당의 인식에 갇힌 ‘꼰대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수 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을 위해 주요 국정 의제들에 대해 합리적인 대안을 수립·실천하는 유능한 정당으로 당을 개혁하겠다...” “수도권 시각으로 당을 바꿔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830[1980년대생, 30대, 2000년대 학번]이 중심이 되는 과감한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매우 당찬 포부?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달리 평가하고 싶지 않다. 물론 평가할 능력도 못된다. 하지만 ‘개혁’인지 개가죽인지, ‘세대교체’인지 세대 얻어터지고 물러나는 건지... 언제 적부터 저들의 선배 뻘 되는 이른바 ‘꼰대’들도 주둥이에 달고 다니던 말씀 아니던가. 우선 저들이 이제 와서 ‘보수’를 들먹이는 게 동네 강아지들이 배꼽 잡을 일이다. 더군다나 그 ‘꼰대’들이 이 나라 ‘국민’들에게 외면당한 이유가 ‘개혁’을 게을리 해서라고?
오히려 그 무슨 “개혁적 보수” 또는 “중도 보수”, 그리고 “외연 확장” 어쩌구 하며 이 나라,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의 이념과 가치와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저들이 말하는 ‘꼰대’들의 이런 작태가 쌓여서 그에 대한 역풍(逆風)이 불어버린 것이 이번 ‘총선’ 결과의 요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세대교체’라... 물론 그 꼰대들은 이제 영원히 이 나라 정치판을 떠나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앞세우는 속심은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 정치판 애늙은이들의 징징거림에 다름없어 보인다.
엊그제 이른바 ‘진보 논객’이라 불리는 진 아무개 교수는 저들 ‘뽐내는 젊음’들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렇게 주절댔다고 한다.
“보수는 산업화의 주역이었지만,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며 박정희 신화가 무너졌다. 이제 ‘586’이 된 ‘386’이 사회 주류로 등극했다. 사회가 이렇게 바뀌는 동안 보수는 박정희 시절의 산업전사, 반공(反共) 전사라는 정체성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젠 실용주의적으로 가야한다...”
이에 일단 적극 동의한다고 치자. 이 나라의 주역인 ‘젊음’들이 강하게 주창한다니... 그렇다면 저들이 짖어대는 바에 합당한 철학은 과연 무얼까? 지금으로부터 수 십년이 지난 1968년 말 세상에 나온 글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민족’과 ‘자주독립’이 이른바 ‘진보(進步)세력’이라는 주사파(主思派)나, 아직도 ‘죽창(竹槍)들고 반일(反日)’에 게거품을 무는 무리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었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이 조(曺)가네 ‘가족사기단’(家族詐欺團) 유(類)들에게 해당되는 건 분명 아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사회적 가치들이야말로 바로 그 ‘꼰대’들이 주둥이로 ‘개혁 보수’니 ‘중도 보수’ 나부랭이를 부르짖으며, 그 무슨 정체불명의 ‘민주화’에 동조하면서 내팽개친 ‘실용주의의 길’과 통한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이렇듯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나 ‘국민정신’은 ‘수도권 시각’이 아니고, 저 농어촌 시골마을에서나 통하는 고리타분한 장타령에 불과한가?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앞의 누구 말마따나 ‘반공’(反共)이라는 정체성이 시대착오이니 버리라고? ‘자유민주주의’ 대신에 ‘민중민주주의’로 3대째 세습독재에게 마음과 몸을 합치자는 말인가. ‘백도혈통’(百盜血統)의 심기나 살피며, ‘퍼주기’[한자어로는 조공(朝貢)이라고도 한다]라고 읽는 북녘과 협력(協力)의 역사를 창조하는 게 이 나라 ‘주류’(主流)의 지향이 되어야 한다고? ‘자유통일’의 원대한 꿈은 실현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 ‘꼰대’들은 이도저도 아니었다. 단지 여기저기 눈치만 살필 뿐... ‘뽐내는 젊음’들이 나이가 아직 어려서 미처 읽어보지 못했을 법한 글이기에, 당신들에게 조심스럽게 일독(一讀)을 권한다. 꼼꼼히 정독한 후에 그 ‘꼰대’들에게 이제까지 했던 짓거리들을 크게 반성하고 완전히 물러가라고 촉구하길 바란다.
아마 거기에 ‘보수’로서 살아남고 번창할 길이 있을 거라 감히 확신한다. 이에 더하여... 사족(蛇足)인 듯싶지만, 5월을 보내는 마당이니만큼 어느 정치학자의 비수(匕首) 같이 논리적이며 의미심장한 분석을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군중들의 폭력적 집단행동을 인민항쟁이라고 부르느냐, 폭동이라고 부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르는 사람의 사상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한 군중들의 폭력적 집단행동을 이끈 사상과 동일한 사상을 가졌거나 그에 동정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인민항쟁이라 부르고, 그들과 반대되는 사상을 가졌거나 비판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폭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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