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외법권의 무소불위 기관’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파행과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선관위는 이름만 거창한 수많은 위원회들과는 차원이 다른 조직이다. 국가의전서열 6위의 위원장(총리급)과 사무총장과 상임위원 등 장관급 공직자 2명에 직원이 3000여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이며, 헌법 제114조에 의거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헌법기관으로 ‘공정과 청렴’이 생명인 조직이다.
그런 선관위에서 선거 때마다 직원들의 출산·육아 휴직이 늘어 대체 인력을 채용하면서 고위직 간부 자녀들을 특혜 채용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정치적 독립성’을 내세우며 각종 감사와 감시를 회피하면서 이런 비리를 덮어온 것이다. 최근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이 채용비리 연루로 동시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지방에서도 유사한 채용비리가 발견되었다. 최근 선관위 자체 조사 결과에 의하면 현재까지 전·현직 직원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경력직 채용인원이 21명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선관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거부하며 버티던 노태악 선관위원장이 결국 직무감찰을 받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선관위의 폐쇄적 권위의식"
헌법 제97조는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 하에 감사원을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감사원법 제20조는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여 행정 운영의 개선과 향상을 기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감사원법 제24조 3항에 의거 ‘국회·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소속한 공무원’은 감찰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 동안 ‘헌법상 독립기구’로서 행정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정부 권고나 감사원 감사를 거부해온 선관위는 선거 때마다 제기되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서는 권위적, 폐쇄적 태도로 일관하며 의혹을 키웠고, 지난 3월 북한의 해킹 공격과 관련한 국정원과 행정안전부의 보안점검 요청조차 ‘정치적 논란 소지’ 운운하며 거부했다.
선관위가 이처럼 권위의식과 폐쇄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고위직 자녀 채용 논란과 같은 불법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선관위가 감사원의 직무감찰에 응하지 않겠다며 버티자, 헌법상 독립기구(선관위)와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는 대통령 소속 기관(감사원)이 직무감찰을 놓고 충돌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회(제3장), 대통령·총리 등 정부(제4장), 법원(제5장), 헌법재판소(제6장)는 별개의 헌법기관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선관위에 대해서는 ‘선거관리(제7장)’라는 ‘직무’로 표기하며 제114조 1항에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선관위는 감사원법의 감찰 제외 대상에서 빠져있다.
"선관위의 인사비리"
선관위 청사에는 ‘엄정 중립 공정 관리’라는 액자가 걸려있다. 공정과 청렴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선관위가 직원들의 업무 회피성 휴직과 선관위 고위간부 자녀들의 ‘아빠 찬스’ 인사비리의 온상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전임 사무총장(장관급)의 경우 강화군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들이 선관위로 이직했고, 6개월 뒤 7급으로 승진했다. 현 사무총장의 딸도 광주 남구청에서 근무하다 선관위에 채용됐고, 현 사무차장(차관급)의 딸 역시 충남 보령시 공무원으로 일하다 선관위에 채용됐다. 특히 이들 자녀의 면접관은 같이 근무했던 ‘아버지 동료’들이었다고 한다.
이들 자녀들은 자기소개서에 버젓이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신다”는 등 ‘아빠 소개서’를 썼고, 이들의 부친은 인사 담당자에게 자녀의 지원 사실을 사전에 알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자녀는 보직과 관사 배정 등에서도 특혜를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지난해 자체감사에서 특혜채용 의혹에 면죄부를 줬고, “채용 절차에 어떤 특혜도 없었다”며 ‘고용 세습’이라는 지적에 반발했다.
"선관위의 모럴 해저드"
선관위의 휴직자 수가 작년 3월 대통령선거와 6월 지방선거 때 최근 10년 사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선거를 앞둔 바쁜 시기에 직원들은 업무 회피성 휴직을 하고, 휴직으로 빈 자리는 고위간부 자녀들을 정규직 경력 공무원으로 채용한 파렴치가 선관위의 ‘모럴 해저드’ 수준이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전·현직 선관위 간부 11명의 자녀 대다수도 이와 같은 정규직 경력 채용의 혜택을 받았다. ‘선관위 공무원 규칙’에 “휴직자 업무를 대행하기 위해 ‘시간 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및 ‘한시 임기제 공무원’을 채용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인사혁신처의 감사를 받지 않는 선관위가 멋대로 정규직 경력 공무원으로 채용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과거 선관위 고위직들이 업무추진비를 현금으로 받고 사용처에 대한 증빙서류도 작성하지 않은 사실도 감사원에 적발되었다. 정부구매카드로 집행하고 사용 목적·시간·장소 등을 증빙서류로 남겨야 하는 기재부 지침을 어긴 것이다. 시도 선관위에서는 난방비, 전기요금, 행사 용역대금, 다과비 등을 운영경비가 아닌 선거경비로 쓴 것도 적발됐다.
이런 와중에 선관위가 300억원 규모의 ‘선거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는 사실도 밝혀졌다. 선관위는 2010년에 32억원, 2019년에 143억원의 예산으로 선거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다 무산됐는데, 작년에 다시 300억원 규모의 박물관을 짓겠다고 했다. 박물관 운영인원을 정규직 12명, 비정규직 및 무기계약직 16명 등 28명으로 정하고, 한 해 운영비를 27억원으로 책정했다. 선거박물관이 선관위 퇴직 간부의 일자리가 될 것임은 뻔한 사실이다.
"선관위가 ‘독립적’이고 정치적으로 공정했는가?"
‘헌법상 독립기구’임을 주장하는 선관위가 과연 ‘독립적’이고 정치적으로 공정한가? 2020년 총선 당시 야당이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민생 파탄’이란 피켓은 불허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친일 청산, 적폐 청산’ 구호는 허용한 사실, 그리고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한 여성단체가 제작한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현수막을 선거법위반을 이유로 불허한 것 등이 공정한 조치였는가?
선관위의 독립성, 공정성의 문제는 현직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직하고 지역 판사들이 각급 선관위원을 맡는 현행 제도의 탓도 크다. 선거소송을 담당하는 법원 판사들이 선거범죄를 고발하는 선거관리기관의 주체가 되는 것이 기초적인 법리 위반이라는 비판도 있다. 또한 선관위원 중 유일한 상근직인 상임위원은 호선직임에도 관행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선관위원이 맡아 왔다. 선관위원장과 상임위원의 독립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선관위의 현실적인 문제는 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비상근으로 겸직함으로써 조직 장악력이 없어 사무처에 끌려가며 선관위 내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선관위의 ‘아빠 찬스’ 논란을 계기로 대법관과 지방법원장들이 각각 선관위원장과 지방선관위원장을 맡는 관례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현직 법관의 위원장 겸직으로 권력분립 원칙이 훼손된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대통령이 선관위원장과 각 지역선관위원장을 전직 법관이 전임으로 맡는 방안을 제시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어찌 선관위만의 문제이겠는가?"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서 당대표 방탄과 입법독재에만 혈안인 민주당, 존재감조차 보이지 않는 여당, 북한과 내통한 민노총, 내로남불 대법원장에 이어 권익위원장과 선관위원장 등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의 파행 등에 가려 웬만한 뉴스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후보가 되자 춘천에서 버스와 지하철로 상경하며 ‘서민 코스프레’를 하더니, 대법원장이 되자마자 17억 원을 들여 관사를 리모델링하고 손자 놀이터까지 만들었다. 그는 취임 이래 편파적인 인사와 원칙에 벗어난 재판 등으로 사법부의 권위와 사법질서를 무너뜨렸다.
대법원 단심으로 진행되는 대통령선거 및 국회의원선거에 관한 선거무효소송은 소송의 성격 상 180일 이내에 신속히 판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훈시 규정'일 뿐으로 현재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수많은 부정선거 관련 소송들처럼 180일 기한을 훨씬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건에 따라 재판기간이 멋대로인 ‘고무줄 재판’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대법원은 최근 국회의원직이 걸린 최강욱 의원 사건을 1년째 끌다가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겼다.
‘반부패 총괄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 전현희 위원장은 권익위 고위간부들의 제보로 청탁금지법 위반, 근무일의 5%만 사무실 출근, 상습적 지각 등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다가 감사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는 제보자를 공수처에 고발했고 감사원장, 사무총장 및 감사관을 공수처와 경찰에 고발했다.
전 위원장의 임기가 이달 말로 끝나는 권익위가 이번 선관위 사태에 대해 부위원장을 주축으로 32명 규모의 조사단을 구성해 최근 7년간의 특혜 채용·승진과 부패행위 등에 대해 경찰청·인사혁신처 인력과 함께 대대적인 전수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국회도 선관위 자녀 특혜 채용 및 북한발 해킹 은폐 의혹과 관련해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하고 세부사항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다.
국회는 선관위에 대한 국정감사, 국정조사, 선관위원 인사청문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국회의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기관이 선관위”라고 하듯이 지금까지 선관위 견제에는 소극적이었다. 결국 선관위의 독선이 이 지경에 이른 건 국회의 직무유기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리더십으로 승화시킬 능력이 없는 사람이 조직의 책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공직의 책임자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