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7 (수)

  • 구름많음동두천 -1.8℃
  • 맑음강릉 3.7℃
  • 구름많음서울 2.1℃
  • 구름많음대전 2.2℃
  • 구름많음대구 0.3℃
  • 구름많음울산 4.0℃
  • 구름조금광주 2.9℃
  • 맑음부산 4.0℃
  • 구름많음고창 2.5℃
  • 구름많음제주 7.8℃
  • 흐림강화 -0.5℃
  • 흐림보은 -0.7℃
  • 흐림금산 -0.8℃
  • 구름많음강진군 0.7℃
  • 흐림경주시 -1.6℃
  • 맑음거제 2.0℃
기상청 제공

‘정동야행’(貞洞野行)... 144년을 더듬다

어떤 가설도 역사적 사실은 바꾸지 못해
건국 대통령의 혜안·의지·고집을 떠올리며...

바로 그 해였다. 이 땅 ‘조선반도’의 실질적인 주인이 뛔국[淸]에서 왜국(倭國)으로 바뀌는 발단의 사건이 있었던 1875년.  왜국(倭國) 군함(軍艦) ‘운양호’(雲揚號)가 이 땅 강화해협을 침입하여 포사격을 해댔다. 그리고 30년의 우여곡절 끝에 이 땅에서 본격적인 식민의 역경이 시작된다.  그 ‘운양호 사건’이 있기 반년 전에 그가 태어난다. 하늘은 그렇게 우연인 듯이 한 인간을 세상에 내놨는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 역정은 고스란히 이 민족과 이 나라의 험난한, 그러나 웅장한 여정과 하나가 되었다.

 

 2019년 3월 26일 오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의 교회에서 ‘우남 이승만 건국 대통령 탄신 144주년 기념 예배’가 있었다.  그 ‘기념 예배’에서 누군가가 “우리 역사에 이승만이라는 분이 안 계셨다면?”이라며 반문(反問)했다.

 

▘100년 전 범민족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일어났던 평화적 비폭력 저항운동[3·1운동]이 가능했을까.
▘이승만이라는 국내외적으로 압도적 신망을 가진 독립운동지도자가 없었더라면 1919년 9월 상해통합임시정부가 가능했을까.
▘나라 없는 식민지 동안 미국·유럽을 넘나드는 이승만의 국제외교투쟁이 없었더라면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가능했을까.
▘해방 후 3년 만에 과연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세계로부터 자주독립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1950년 공산북한의 남침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가 아니었더라면 한미방위조약으로 국가안보 100년 대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그가 아니었다면 미국으로부터 20개 사단 60만 대군의 군비와 8억불의 경제원조를 받아 낼 수 있었을까.

 

물음은 이어진다.

 

“144년 전 1875년 3월 26일 이승만이라는 분이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이 나라가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국민이 지금 수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있을 수 있을까요...”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무의미하다. 설사 어떤 가정을 하더라도 사실(史實)은 결코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다! 그저 담담하게 말하면 그가 ‘계셨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답이 뻔한 위의 ‘어리석은’(?) 물음은 이 나라 건국 대통령을 부정·폄훼하거나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묻어버리려는 작금의 작태들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를 담은 거였으리라. 그리고...

 

‘기념 예배’를 마친 후, 그 예배당을 뒤로 하고 덕수궁(德壽宮) 돌담길을 따라 걸어내려 오는 길... 대한문(大漢門) 앞에서는 ‘봉건(封建) 조선(朝鮮)의 수문장(守門將) 교대식’을 재연(再演)하는 북소리와 함께, 그 교대식을 소개하는 조선·양키·뛔국·왜국의 말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비록 로스께의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북소리는 다시금 144년 전부터의 이 땅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정동’(貞洞)이란 동네가 그래서 그런지...

 

허울만 좋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이어,이름뿐이던 십 수년의 ‘대한제국’, 그리고 망국(亡國)과 식민(植民)의 역사.

 

 “전시 약 120만 명의 일본군은 3개 보병단과 13개 예비여단으로 이루어졌고, 이 중 사상자는 68만 9000명[전사자 13만 5000명]... 해군은 전함 7척, 무장순양함 8척, 경순양함 17척, 구축함 19척, 어뢰정 28척, 포함 11척 보유...”

 

 ‘대한제국’이 국권(國權)을 상실하기 직전의 ‘러일전쟁’ 당시에 ‘왜국’(倭國)의 군력(軍力)이었다고 전한다.  ‘대한제국’의 군대는 ‘수문장 교대식’에서 나발불고 북치는 군졸까지 합해서 수 천명에 불과했고,  가난하면 어린아이들이 고생하고, 그 나라 군대가 나약하면 아녀자들이 수모를 당하는 것은 인류사의 보편적인 법칙이지 않은가.


지난날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을 기초로 의지와 결기를 모으지 못한 채, 그저 남 탓의 징징거림으로 낮과 밤을 지새우는 나라와 국민은 결코 과거의 치욕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나라에서는...   ‘봉건’의 ‘백성’(百姓)을, ‘자유민주’(自由民主)의 ‘국민’(國民)으로 거듭나게 만든 ‘건국혁명’(建國革命)을 완전히 뒤엎으려는 반역(叛逆)의 음모가 진행 중이다. 어렵사리 쟁취한 ‘국민’을, 이번에는 으‘공산’(共産)의 ‘백성’[인민=노예]로 되돌리려는 퇴행(退行)이 활개를 친다.  비록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건국혁명’으로 시작된 호국(護國)과 중흥(中興)과 자유민주발전의 승리·성공·진보인 이 나라 위대한 역정을, 지우거나 왜곡하거나 비하(卑下)하는 작태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전형적인 패배(敗北)와 퇴보(退步)와 분열(分裂)의 타령에 불과한 ‘친일파’와 ‘빨갱이’를 읊조리는 목소리가 높아만 가는 가운데, 과거사(過去事)를 이 나라 정체성(正體性)의 와해와 이념·정략의 도구로 써먹기 위해 별별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반역사적(反歷史的)이며 몰가치(沒價値)한 작태가 ‘국민’들의 저항을 견디지 못하여 결국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역사책을 통해 결과를 알고 보는 144년은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잠깐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 우리네가 살아가는 현재에 있어서는 그 10분 1조차도 무척 긴 세월이고, 그 장래와 결과를 실감(實感)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혼돈과 방황의 끝자락에서 ‘정동’(貞洞)을 거닐며, 역사에 대한 짧은 안목으로나마 다시 떠올려 봤다.

 

 ‘봉건 조선’의 양반이었으나, 그 근본을 잊은 채 이 땅의 ‘자유민주 혁명가’로 탈바꿈하여 ‘낀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고 높기만 했던 고난의 파도를 슬기롭게 헤쳐나간 혜안과 의지와 고집을...

 

 “다른 나라가 그런 행복을 누리는 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압제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궐기하여 자손들에게 무궁한 기초를 물려주기 위하여 한없이 피를 흘리고 많은 재물을 바치는 것을 감수했으며, 그 후손들은 그 기초를 잘 지키고 보전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나은 데 그 나라가 어찌 다른 나라보다 못하겠는가.”


참교육

더보기
MBC노조, "언론인의 자세 먼저 회복하고 언론탄압 운운하라"
대통령실의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불허에 대해 언론노조가 살벌한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탄압이자 폭력이며, 언론자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방송 재허가를 무기로 종합편성채널들의 입을 틀어막았을 때 언론노조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전용기에 못 타는 것은 큰 문제이고 방송사 허가 취소는 사소한 문제라 그리하였는가. 아니면 우리 편 언론탄압은 ‘좋은 탄압’이라 괜찮다는 뜻인가. 언론단체의 성명조차 편파적이면서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게 참으로 낯부끄럽다. 언론노조는 “대통령실이 권력비판을 이유로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아니다. 최근의 MBC 보도는 권력비판이 아니라 왜곡과 선동에 가까웠다. MBC 기자는 순방취재단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사석 발언을 타사 기자들에게 알렸다. 대통령실의 보도 자제 요청은 앞장서 거부했다. 방송할 때는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까지 자막에 넣어 방송했다. MBC 특파원은 한국 대통령이 미국 의원들에게 ‘fucker’라는 아주 심한 욕을 했다고 백악관과 국무성에 알렸다. 언론노조는 이게 ‘권력비판’으로 보이는가. MBC는 정말 권력을 비판해야 할 때는 침묵했다. 손혜원 의원 투기

참 아카데미

더보기

PHOTO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