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수상(受賞)의 계절에 품어본 단상(斷想) =
불안·초조하게 그 결정을 주목했다고들 하던데...
‘비핵화 사기극’ 광대에게 그 상(賞)이 돌아갔다면...
“외신들은 문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자로 예측했다.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 등에서 결정적 역할은 물론, 한반도를 넘어 세계 평화 무드를 조성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2018년 이맘때쯤 아무개 일간지 기사의 한토막이었다.
글쎄... 그때는 아마 바라는·믿는 분(糞)들도 많았지 싶다. 그 무슨 남-북, 미-북 정상회담이 ‘비핵화’를 내세운 코미디·사기극(詐欺劇)이었다는 걸 몰랐거나, 알았다 해도 그저 그렇게 속아 넘어가기를 바랐던 분(糞)들께서는...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동(東)아프리카 에티오피아와 이웃 국가 에리트레아 사이의 20년 분쟁을 종식시키는 데 앞장선 ‘아비 아머드’[43] 에티오피아 총리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비는 역대 100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여기저기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고. 많은 수의 ‘국민’들은 아니지만, 꽤 됐다고 한다. 겉으로야 대놓고 그러진 못했지만, 내심 가슴 졸이며 불안·초조하게 결과를 주목하고 있었으리라. 그럴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다해도...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가짜 평화문서에 속아 근시안적·단편적 오판(誤判)으로 ‘노벨평화상’을 선뜻 건넨 것처럼, 혹시나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2000년의 어이없는 판단·결정을 재연하지나 않을까 해서...

그 오판(誤判)이 있은 지 6년 후에 북녘에서는 1차 핵실험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그때의 ‘평화’는 가짜였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 재앙[禍]을 부풀린[膨] ‘팽화’(膨禍)에 다름 아니었지 않는가. 올해에도...
‘사기(詐欺) 문서(文書)’와 함께, 입[口]으로 ‘평화’를 외친 횟수로 따져 ‘노벨평화상’이 결정된다면 수상자는 거의 확실했다. 더군다나 ‘평화’의 신개념(新槪念)을 정립한 공로로 쳐도 마찬가지였을 듯하다. 엊그제 유엔 총회에서 자신 있게 설파하셨다.
“평화는 대화를 통해서만 만들 수 있습니다. 합의와 법으로 뒷받침되는 평화가 진짜 평화이며, 신뢰를 바탕으로 이룬 평화라야 항구적일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그 행동 자체로 새로운 평화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습니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말씀을 듣고서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라고 짖어댔다나 어쨌다나...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경우도 있다. ‘평화’를 멋지게(?) 휘갈겨 쓴 솜씨로 ‘노벨평화상’을 탈 수 있다면 아마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사진과 함께 감상하시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오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판문점 평화의집 1층에서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歷史)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 김정은 2018. 4. 27.’라고 썼다.”

물론 ‘이 녀석’도 주둥이에 ‘평화’ 또는 ‘비핵화’를 달고 살기는 한다. ‘사기(詐欺) 문서(文書)’ 또한 합작품이었다. 그 ‘평화’의 속내가 자신의 영속적인 안녕(安寧), 그리고 권좌(權座)의 유지에 불과하지만서도...
비슷하지만 특이한 경우도 있단다.
주둥이에 ‘평화’를 자주 올리지도 않고, 그걸 ‘범(汎) 인류적’ 차원에서 실천한 마음이 크게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허나 ‘의지’와 ‘욕망’으로 셈하면, 단연 ‘노벨평화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세인(世人)들은 입을 모은다.
“노벨평화상이 공정하게 심사된다면 내가 많은 일로 노벨상을 받게 될 것”
양키나라 ‘도’통령께서는 당당하게 외치면서, 이런 황당한 소리도 흔히 짖어대셨다고.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사이가 상당히 좋다...”
이쯤 되면 이 나라 적지 않은 ‘국민’들이 내심 가슴 졸이며 불안·초조했던 이유가, 충분하지는 못해도 대충 설명은 되었으리라 믿는다.
3인 각색(各色)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조선반도’가 됐건 ‘북녘’이 앞에 붙던 ‘비핵화’를 둘러싼 사기극(詐欺劇)의 광대들 각자가 내심 그 상(賞)을 은근히 바랐던 것 같다. 저간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의심할 바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만에 하나 3인 중 누구라도 어떻든 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受賞)했다고 치자. 그 순간 ‘북녘의 비핵화’는 지금의 단계에서 그냥 멈추지 않았겠는가. 흐지부지 되고 마는 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었을 게다. 북녘 세습독재자의 핵을 쥔 손아귀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을 테고...
이 나라의 질곡(桎梏)은 헤어날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어 섰을 게 분명하지 않았겠는가.
어찌 됐든 이런 잡스런 상념(想念)이야 절반쯤은 가정(假定)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북한의 핵 보유는 공산주의 체제 아래 한반도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고전적(古典的)인 담론(談論)이 새삼 강조되고 있단다.
“북한과의 전쟁은 재래식[무기]와 핵이 동시에 동원될 상황... 지금까지 알려져 온 개념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더 이상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고.
양키나라 조야(朝野)에서 나오는 말씀들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리풀 동네에서 들려오는 “조국(曺國) 수호” 떼창에 내심 흐뭇해하면서, ‘조국’(祖國)의 안보(安保)마저도 ‘입[口]으로만 평화’에 기대는 그 여유(?)에 감탄 섞인 한탄·분노만이 절로 높아 간다. 글을 마치며...
‘노벨상’의 시기를 맞아, 겉으로는 별 상관없는 듯 보이지만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크게 연관이 있을 법해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옷깃을 스미는 계절에 ‘조국’(祖國)의 앞날을 근심과 열정으로 내다보며 ‘북악(北岳) 산장’ 입구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애국지사·동지 여러분께 재삼 감사와 응원을 드린다.
건투·건승이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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