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올해는 6.25 발발 70주년인 해이다. 오늘 갑자기 “6.25전쟁을 일으킨 게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한, 북한, 남북한, 미국, 소련, 중국?”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변을 할까? 이 질문은 최근 6.25전쟁 70주년에 즈음하여 국가보훈처가 한국갤럽에 의뢰하여 실시하고 있는 국민인식조사의 첫 번째 질문으로 SNS를 통해 널리 유포된 바 있다.
이 질문에 대한 61세의 남성의 답변은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질문자는 이북에서 왔어요? 국가관도 없어요? 이거 나라가 완전 망했네……”이었다. 이에 대한 질문자의 답은 “국민인식조사라서…… 국가보훈처에서 이거 의뢰 받아서 진행하는 거라서……”이었다. 61세이면 6.25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다.
6.25전쟁이 남침인가 북침인가를 묻는 정부
보훈처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국민에게 6.25 전쟁이 어느 나라가 저지른 전쟁이냐고 묻는 의도가 무엇인가? 6.25전쟁 60주년 당시에 같은 국민의식조사를 했기 때문에 국민인식 변화를 확인하고, ‘북침’이라는 일부 인식의 원인을 찾고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한 정책 수립을 위한 것이라는 보훈처의 해명은 어불성설이다.
보훈처가 이번 조사 관련 해명보충자료로 올린 2010년 10월 한국국방연구원의 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6.25전쟁이 북한의 단독 남침이란 응답이 41.8%, 북한이 소련의 지원을 받은 남침이란 응답이 53.6%로 북한의 남침으로 인식한 국민이 95.4%였고,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남한의 북침이란 응답은 0.3%, 남한의 단독 북침이란 응답은0.1%였다.
이 조사에서 ‘남한 단독 또는 미국의 지원으로 북침’했다고 응답한 국민은 6.25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중고교 연령인 15~19세와 20~29세 그룹에서 각각 1.0%, 50~59세 그룹에서 0.6%인 외에 다른 연령대에서는 0%였다. 2005년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6.25는 누가 일으켰는가'에 대한 응답 중 '남한 단독’ 또는 ‘미국과 남한'이라는 응답은 0%이었다. 그렇다면 15~19세 그룹의 인식은 교육(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탓으로, 50~59세 그룹은 개인의 이념적 성향 탓으로 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조차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말할 수 없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긴 하지만, 0%~1%의 국민인식의 변화 추이를 국가예산을 써가며 10년 넘도록 확인해서 얻는 실익이 무엇인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보훈처가 오히려 의문을 던지는 셈 아닌가? 보훈처 말대로 “올바른 역사관 정립”이 목적이라면 이런 국민인식조사를 계속할 게 아니라 진작부터 학교에서 바른 역사교육을 시켰어야 하는 것 아닌가?
6.25전쟁이 남침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입증하는 수많은 국내외 자료들이 존재하지만, 차제에 보훈처의 질문에 대해 상식에 입각한 논리로 6.25전쟁의 남침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6.25를 ‘북한의 불법침략’으로 규정한 유엔안보리 결정
1950년 유엔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는 6.25 전쟁을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규정하고 유엔군을 남한에 즉각 파병했다. 우선, 6.25 전쟁이 남한이 북한을 침공한 전쟁이었다면 침략국인 남한에 전세계 국가들이 유엔군을 파병했겠는가? 유엔안보리의 결정은 유엔의 다른 기구의 결정과는 달리 ‘유엔(국제연합)헌장’에 의거 회원국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6.25 전쟁을 ‘북한과 중공의 불법침략’으로 규정한 유엔안보리 결정을 수용하고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2010년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용산 미군기지를 방문해 미군 장병들 앞에서 6.25전쟁 60주년에 관한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문에 “한국전쟁이 지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쟁이 시작된 곳에서 끝났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이곳에서 싸운 사람들의 희생을 빗대어 ‘무승부를 위해 죽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무승부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승리였습니다. 그때에도 승리였고, 오늘도 승리인 것입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그때에도 승리였고, 오늘도 승리’인 이유
6.25 전쟁에는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의 전투병력과 5개국의 의료지원팀이 참여했고, 세계 40개국이 물자와 수송을 지원했고 6개국이 전후 복구를 지원했다. 1953년 당시 총 60개국의 유엔회원국 중 52개국과 교황청을 포함한 비회원국 15개국 등 총 67개국이 남한을 지원한 것이다. 6.25전쟁이 남한에 의한 북침이었다고 주장하려면 우선 이 많은 나라들이 무슨 목적과 명분으로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침략전쟁에 참전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군이 침략전쟁에 참전한 것이라면 침략을 시작했던 국경에서 휴전을 한 것을 승리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때에도 승리”라는 것은 당시 북한과 중공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영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성공했다는 의미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한국전기념비에는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우리 국민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명령에 따른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글이 있다. 만일 6.25전쟁이 남한이 벌인 침략전쟁이었다면 “(나라를) 지킨다(defend)”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6.25전쟁 관련 국내외 각종 증거자료들은 차치하고 단순히 군사적 측면만 보더라도 6.25전쟁은 남침임이 명백하다. 당시 북한군은 6.25 침략 후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유엔결의에 따라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이 즉각 참전하여 7월5일 오산 전투에 투입되었으나 북한군에 계속 밀려 8월초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했다. 전세계 고금의 역사를 통해 한 치의 진격은 고사하고 후퇴로 시작하는 침략전쟁은 없다.
대한민국이 지고 있는 빚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은 연인원 기준으로 196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미군이 179만 명으로 가장 많다. 이 전쟁으로 한국군 14만 9,050명과 미군 36,940명, 미군 외 UN군 3,730명이 사망했다[사망자수는 전투중사망자(KIA: killed in action) 구분에 따라 다소 상이함].
특히 6.25전쟁 참전 미군 중 현역 고위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하여 35명이 전사한 것은 전쟁터에서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이들 6.25전쟁 참전자 중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들, 월튼 워커 초대 주한미8군사령관 아들,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아들, 제임스 벤플리트 미8군사령관의 아들, 필드 해리스 미해병 제1항공단장의 아들 등이 포함되어 있다.
벤플리트 미8군사령관의 아들 지미 밴플리트 2세는 공군 중위로 6.25전쟁에 자원 참전하였다가 1952년 4월 2일 압록강 남쪽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실종되었다. 필드 해리스 미해병 제1항공단장의 아들 윌리암 해리스 중령은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마지막 유엔군사령관인 마크 클라크 대장의 아들 윌리암 클라크 대위는 전투 중 세 번에 걸친 부상으로 전역을 한 후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지난 2013년 1월 국가보훈처의 국민의식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정착에 필요한 노력에 관한 복수선택 설문 결과 ‘북한과의 협력과 화합’, ‘자주국방역량 강화’가 각각 45% 내외를 차지한 반면 주변 ‘주변국과의 균형외교 강화’가 27.1%였고 ‘한미동맹강화’는 20.4%에 불과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자신은 물론 자기 아들까지 참전시킨 미군 장군과 국민이 있는가 하면 훈련 중인 미군 탱크에 치여 2명의 여학생이 사망한 사고를 놓고 ‘살인자’라며 촛불시위로 온 나라를 들썩인 국민도 있다.
6·25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에서 4.19의거 60주년, 광주사태 40주년을 언급하면서도 6.25전쟁 70주년은 말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피 흘려 싸우고 목숨을 바친 국군과 이름없는 학도병들, 그리고 전세계의 6.25전쟁 참전 유엔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보훈처가 국민들에게 새삼 6.25전쟁 도발국가가 어디인지를 물을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보훈처의 황당한 처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보훈처가 서울현충원에는 자리가 없어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 사후에 서울현충원에 모실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백선엽 장군 측에 통보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여권에서는 ‘친일’ 운운하지만 실제는 그가 낙동강전투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한미동맹의 상징’이기 때문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지난 5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당선자의 현충원 내 친일파 파묘(破墓) 주장에 이어5월 28일 김홍걸 당선자가 나서서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 운운하며 서울현충원 안장을 반대했다.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아낸 전쟁영웅의 서울현충원 안장을 거부하는 건 반민족적, 반역사적 망발이다.
며칠 전 보도에 따르면 6.25참전용사인 한 프랑스 노인이 공영방송 ‘프랑스3’ 인터뷰에서 "지난 4월 말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으로부터 편지와 함께 마스크 5장을 우편으로 받았다"며 “한국이 70년 전의 참전용사를 잊지 않고 있어서 감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만일 이 참전용사가 70년이 지난 6.25전쟁을 놓고 한국 정부가 “6.25 전쟁이 어느 나라가 저지른 전쟁이냐?”고 국민들에게 묻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혼란스럽겠는가?
지난 3월 '6·25 유엔참전용사 예우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 11월 11일을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로 정한다고 한다. 또한 정부가 유엔참전용사의 공적 발굴 및 공훈 선양, 사망 또는 국내 안장 시 예우 및 지원 등 유엔참전용사의 명예 선양과 유엔참전국과의 우호증진 방안 등 세부계획을 수립한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역사를 잊고 은혜를 잊고 살아서는 안 된다
6.25 전후 세대는 물론 남북 지도자가 함께 군사분계선 남북을 넘나들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홀린 국민들에게 호국선열들은 그저 잊혀진 옛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건 애국자들을 영웅으로 기리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혼을 심어줘야 한다. 목숨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고 예우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재앙이 닥칠 때 누가 목숨 걸고 나라를 구하려 나서겠는가?
윈스턴 처칠 전 영국수상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야 말로 역사를 잊고 은혜를 잊고 살아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선진국을 논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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