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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을 되씹어 본다

1970년 간첩선 나포와 '제2연평해전'은 같은 날짜

故 윤영하 소령 부친이 '간첩선 나포' 경비정 정장

치밀하고 집요하게 벌인 북녘의 복수극으로 봐야

 

 

 

지금으로부터 52년 전(前)인 1970년 6월 29일...

32해상경비사 소속 경비정 PB-3(50t)은 이날 이른 새벽 서해 오이도 남방 1.4Km까지 접근하던 중 우리 해안부대의 위협사격을 받고 도주하던 무장간첩선(4t)을 두 시간여 동안 추격 끝에 나포했다. 경비정의 정장은 윤두호 대위(해사 18기)였다. 윤 대위는 이 작전의 전공을 인정받아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2002년 6월 29일. ‘한일 월드컵’ 3-4위 결정전(한국vs터키)이 있던 날이었다.

오전 10시쯤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NLL을 침범해, 한국 해군 참수리 357호 고속정에 선제 기습공격을 가한다. 교전 중 해군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했다. 북한군은 사상자 30여명을 내고 경비정이 화염에 휩싸인 채 도주했다. 제2연평해전이다. 그때 서해바다를 수호하기 위해 장렬히 전사한 윤영하 소령(해사 50기)은 1970년 간첩선을 나포한 경비정의 정장(艇長) 윤두호 대위의 ‘아들’이다.

윤두호-윤영하 부자(父子)의 조국에 대한 대(代)를 이은 헌신에 고개를 숙인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와 유가족, 참전 장병에게도 깊은 애도와 감사와 위로를 드리는 건 국민 된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이와 함께...

다시 한번 되씹고 새겨야 할 중요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

1970년 북녘 무장간첩선 나포와 32년 뒤 2002년 고속정 선제 기습공격... 이 두 사건이 일어난 날짜가 6월 29일로 같다. 아버지는 무장간첩선을 나포했고, 아들은 서해바다를 누비는 고속정 정장이었다. 그날에 아들의 고속정은 기습공격을 당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왠지 꺼림칙하지 않던가.
당시, 북녘의 대남공작(對南工作)에 정통했던 예비역 장성(將星)은 단언(斷言)했다.

“북괴의 복수극(復讎劇)이다!”

그 예비역 장성의 설명은 대략 이랬다.

“북녘 대남공작 부서에서는 무장간첩선이 나포된 후에 윤두호 대위를 계속 추적했다. 30여년 동안이다. 아들이 해군 장교로 임관했고, 고속정 정장이 된 것도 알게 되었다. 그날의 복수를 기획한다. 고속정의 기동 항로와 윤영하의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출동하는 날을 염탐했다. 취약시기인 월드컵 경기와 무장간첩선 나포일이 맞아떨어졌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위의 설명이 합리적인 추론(推論)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저들의 집요함과 치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주목할 것은 남파 간첩들의 장기간에 걸친 공작활동이다. 또한 우리 ‘국민의 군대’에 박혀있었을지도 모르는 오열(五列)들의 암약(暗躍)이다.

예를 들어, 고속정의 기동 항로와 시간대를 북녘에서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저들이 우리 해군의 통신을 도청(盜聽)했을 수 있다. 반면에, 우리 군에 침투해 있던 오열(五列)이 은밀하게 보고했을 가능성도 지나칠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다시 20년이 흘렀다.

『해군은 29일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제2연평해전 20주년 승전 기념식’을 개최했다... 해군은 올해부터 ‘승전 기념식’으로 행사 명칭을 공식적으로 바꿨다...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에도 죽음을 각오한 결연한 의지로 NLL(서해 북방 한계선)을 사수한 승전으로서 제2연평해전의 의미를 제고한다”며 “아울러 전사자 및 참전 장병, 유가족의 명예도 함께 현양하며 NLL을 지키고 있는 장병들의 전승 의지를 고양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제2연평해전’을 제대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주적(主敵)과 그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결연한 자세, 항시 전투태세 완비,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력, 즉각 응징의 기개, 끊임없는 관심과 보훈을 통한 장병 사기(士氣) 진작 등등...

국민과 ‘국민의 군대’가 함께 지속해야만 한다. 특히나, 이에 더하여...

북녘의 치밀하고 집요한 대남공작에 대한 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국가·군사적 보안과 방첩이 결코 구시대의 유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史實·事實)은 바뀌지 않는다.

제2연평해전, 나아가 적(敵)의 도발과 관련이 있을 만한 몇 마디를 적는다. 물론 베낀 거다.

“작은 굴욕을 참으면, 더 큰 굴욕을 겪게 된다.”
“내일이 다르길 바란다면, 과거를 공부하라.”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닌 ‘망각’이다.”
“승리가 없으면 생존은 없다... 그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바로 용기(武器가 아니라 士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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