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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구린내 나는 ‘짐짝’을 어찌할꼬

국민의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덩어리...‘주운 돌’의 생떼와 징징거림은 계속되고
‘묵은 똥’ 뭉개겠다니, 냄새는 더욱 진동...해결의 순서마저 헷갈리며 불신만 조장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언제 적부터 저잣거리의 별명 그대로 국민의 등골을 휘게 하는 ‘짐짝’이 된 지 오래다. 특히 국민의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대의 겹겹이 쌓은 뻘짓과 위선(僞善)과 웃기 힘든 개그들 덕에 ‘정권 교체’라는 걸 이뤘다. 하지만 이미 상대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 분투 노력을 시작했다는 평이 대세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기껏 ‘비데 위’로 갔는데...

 

재판부는 우선 이 대표에 대한 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가 비대위를 설치할 정도의 ‘비상상황’이 아니라고 봤다... “일부 최고위원들이 국민의힘 지도체제 전환을 위해 비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판결에 납득이 안 간다”고 궁시렁궁시렁 입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하지만 판새의 법리적 판단은 그렇다고 치자. 정작 '비상 상황'이라고 했으면... 최소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짓거리를 했어야지 판새의 판결을 시비할 여지라도 있는 거 아닌가.

 

급한 김에 ‘비데 위’로 갔다지 않나. 바지와 팬티 내리고 '묵은 똥'을 싼 다음 물을 내리는 게 상식이고 순리일 진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16일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았다... 권 원내대표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님들께서 다시 일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리고 어깨가 무겁다”며...

 

  본지에서 며칠 전 지적한 바 있다.

  ‘다시 일할 기회’는 무슨, ‘다시 일 저지를 기회’가 맞을 거라고...

 

“더 이상은 국제 상황에 대한 핑계나 전 정권에서 잘못한 것을 물려받았다는 핑계도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오갔다. ‘을지훈련’중인 그날이었다고 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술 반입이 일절 금지된 연찬회가 진행된 날 별도의 술자리를 가진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연찬회에서 사실상 '금주령'을 내린 가운데 벌어진 일인 만큼 파장이 예상된다... 해당 영상에서 권 원내대표는 연찬회 때 입었던 단체 티셔츠를 입고 있다...

 

‘묵은 똥’은 싸지도 않은 채 물만 내리려 했다면, ‘비데 위’로 갈 필요가 없었다. 그저 시늉만 했거나, 딴 목적이 있었을 듯하다.  물론 국민들은 그 목적을 잘 알고, 필요성에 대해서도 대체로 동의하는 상황이었다. ‘주운 돌’에 때도 잔뜩 묻었고, 쓸모없이 ‘모만 많은 짱돌’인 게 밝혀졌다. ‘짐짝’이 그 돌 때문에 무게가 많이 나가서 국민들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동시에, ‘묵은 똥’들 또한 ‘짐짝’의 크기와 근수(斤數)를 늘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그 냄새로 인해 뭇 사람들이 무척 괴로워하질 않는가. 따라서...

 

자기 혼자 움직이지 못하는 썩은 짱돌이야 힘을 모아 던져버리는 건 맞는 거다. 그와 함께, 스스로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묵은 똥’들도 ‘비데 위’에서 씨원하게 처리했어야 했다. 저잣거리의 목소리다. 민심(民心)이 그렇다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27일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한 법원 가처분 결정과 관련, 당헌·당규를 정비한 뒤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 책임론이 제기된 권성동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해서는 이번 사태를 수습한 뒤 의총을 재소집해 의원들의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묵은 똥’을 최대한 뭉개 보겠다는 심보인가? 아직도 전후를 잘못 짚고 있다. ‘이번 사태를 수습한 뒤’가 아니라, ‘이번 사태를 빨리 수습하기 위해’가 올바른 셈법이라고들 이구동성(異口同聲)인데...

 

이제 ‘묵은 똥’을 싸려면 ‘비데 위’로 갈 수도 없다고 한다. ‘재래식’에서라도 처리할 수밖에 없다질 않나. 그러지 못하면, ‘주운 돌’의 징징거림과 생떼를 눌러버릴 명분마저 빛이 바랜다. 그 무슨 ‘X접대’마저 똥뻘에 묻혀버리고 말 참이다. 이미 ‘주운 돌’은 착착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X접대’와 관련해서는 어떤 메시지를 날릴지 궁금하다고.

 

전날 법원으로부터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결정을 끌어낸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경북 칠곡을 찾았다... 이 전 대표는 “오랜 세월 집안이 터전잡고 살아왔던 칠곡에 머무르면서 책(을) 쓰겠다. 점심은 칠성시장에 들러서 먹는다. 역시나 단골식당이다”라고 적었다...

 

책이라... ‘참회록’ 같은 거야 머릿속에 담았을리 없을 테고... 혹시 ‘X접대’ 불가피론이나 예찬? 하버드 출신에다가, 경험에 의한 저술(著述)일 수 있다. ‘성(性)스런’ 청춘들의 공감을 듬뿍 얻게 될 듯도 하다. 이런 제목이라면...

 

“X접대의 바람직한 방향 : X접대와 비아그라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어찌 그런 망측한 상상(想像)을 할 수 있느냐고? 요즈음 ‘짐짝’의 행태가 하도 야릇해서 상상마저 비슷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아무튼...

 

‘주운 돌’과 ‘묵은 똥’들 때문에 그 ‘짐짝’의 무게와 부피는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는 듯하다. 나라를 사랑한다거나 먹고사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것들을 국민들이 애써 짊어질 이유가 없다. 아우성이 높아만 간다. 점점 무겁고 더러워지는 ‘짐짝’을 던져버린다는 건...

 

  바로 심판이다. 어느 때 어떻게 그 ‘심판’이 내려질지 짐작하기 결코 어렵지 않다.

 

국민의힘 공부모임에 참석한 김병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위 위원장은 24일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 하락세와 관련해 정부여당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러면서 정권 재창출 가능성에도 “이대로 가면 우리는 5년 뒤에 진다”고 경고했다.

 

‘5년 뒤’라고? 너무 길게 내다본 거 아닌가. 내일 중으로도 가능할 거 같은데... ‘윤주주의’(尹主主義)가 펼쳐지고부터 ‘이름 팔이’ 훈수꾼들이 넘쳐나고 있다. 특히 ‘짐짝’이 길을 잃고(잊고) 헤매자,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든다.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공통적으로 진솔(眞率)은 찾기 힘들다.

 

 

  그 축에 끼고 싶진 않아, 이만 줄이면서... 들은 풍월들로 마무리 한다.

 

  “짐 무거운 배는 항해가 어려운 법”

  “정치의 문제는 ‘겸손의 결핍’에서 기인한다”

  “사람은 속여도 세상은 못 속인다”

  “(배신의) 칼은 항상 등 뒤에 있다”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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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 "학부모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아..."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 민주시민생활교육과는 8월 26일 관내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등에 ‘2022년 성 평등주간 행사 안내 및 참여 협조’ 공문에서 각 학교별로 ‘성 평등’ 교육 운영 현황을 조사에서 학부모 존재 자체를 개 무시하는 지침서를 내보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청은 교사들에게 ‘학부모(學父母)’ 대신 성별 구별이 없는 ‘보호자’ 또는 ‘양육자’라는 표현을 쓸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강제 의무화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모든 정책에 ‘교사’, ‘교원’, ‘학교’, ‘학부모’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서울시 교육청이 주장하는 ‘성별 없는 보호자’, ‘성별 없는 양육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례는 어느 법률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즉, 현재 유치원, 초·중·고 학교의 학생을 보호하고 양육하고 있는 학부모를 어느 법률에도 없는 용어로 완전히 개 무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1948년 건국 이후 ‘학부모’란 민법 상 학생을 책임지는 아버지(부) 어머니(모)는 물론 성인이 된 형제자매, 할아버지 및 할머니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담당 공무원의 적시한 ‘성별 없는 보호자’, ‘성별 없는 양육자’는 이러한 교육계의 관습을 전혀 모르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