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작
10월의 마지막 열기는
담벼락 담장잎을 더욱 부드럽게 했다.
내일이면 매서운 바람에 한잎 한잎 떨어지고
찬서리에 떠는 붉은 장미,
제자리를 잃은 고아처럼 긴 이별을 생각한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날, 천천히 하루를
보내고 싶다.
말라 색바랜 고추밭, 논바닥의 볏가리를 덮은
자욱한 안개, 지워진 기억과 정지된 내 감정을
부르기 위해 아주 천천히 해돋이를
늦추고 싶다.
내일이면 하얀 들녘에 까마귀소리가
내려 앉는다. 산그림자가 마을 어귀로
다가 오고 해저녁 소죽간에 여물을 삶는
아낙이 길잃은 나그네를 반가이 맞겠지
오늘은 10월의 마지막날,
천천히 하루를 보내고 싶다.
검푸른 하늘, 새색시 입술처럼 걸린 초승달이
석양에 물들기 위해 아주 천천히 황금 파도로
해너미를 늦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