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2 (화)

  • 맑음파주 1.2℃
  • 맑음서울 2.2℃
  • 맑음인천 1.3℃
  • 맑음원주 3.9℃
  • 맑음수원 3.0℃
  • 맑음청주 4.7℃
  • 맑음대전 6.2℃
  • 맑음대구 7.7℃
  • 맑음전주 6.9℃
  • 맑음울산 7.7℃
  • 맑음창원 8.2℃
  • 맑음광주 8.2℃
  • 구름조금부산 9.3℃
  • 맑음목포 7.3℃
  • 맑음제주 11.6℃
  • 맑음천안 3.9℃
  • 맑음경주시 7.9℃
기상청 제공

<수필> 겨울 나목

박재형 저

 

 

을사년을 맞이하면서 겨울은 더욱 깊은 계절 속으로 들어갔다.
아우성 치는 골바람, 숲속 빈터에 누운 낙엽들도 이젠 곤한 잠에 떨어지고, 나뭇 가지에 몇 개의 잎을 달고 견뎌내는 잎새, 모진 찬바람과 거센 눈발에 나무는 발가벗은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홀로 서있다.
주위에는 하얀 공간의 대지, 파란하늘에 잠들지 않은
흐린 낮달만이 자리한다.
나는 홀로인 것이 두렵다.
낯모를 고독과 외로움이 커가고 시간과 공간은 그리움으로 다가와 가득 차지만 언제나 길들여지지 않는다.
건너편 햇살이 잘 비치는 언덕에 키큰 나목이 서있다.
눈길에 멀어진 햇살과 벌판을 달려온 찬바람, 메마른 기침으로 지새운 나목에게 찾아간 햇살도 부질없음을 알리는 두려움을 전한다.
그리고 겨우내 멍울진 사연만이 가지 끝에 자리한다.
지금 눈이 소복히 쌓인 키큰 나뭇가지 끝에 달빛이 쉬고 있다.
지난 날 키큰 나목은 봄 햇살을 좋아했고, 파란 하늘도 좋아했다.
검푸른 언덕을 타고 흐르는 여름 햇살의 적막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고, 안개처럼 몽롱한 기억속에 흐르는 그리움을 흔드는 눅눅한 남동 바람이, 푸른잎의 미세한 흔들림으로 빈 가슴을 채우던 긴 인내의 시간을 기억한다.
가을의 햇살은 나목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했다.
나의 모습이 비록 화려한 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넘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아, 나는 뜨거운 사랑을 담은 붉고 푸른 가슴에, 우아한 미소는 가끔 일탈을 꿈꾸고 싶어,
때론 환상같은 마법에 둘러싸여 화려한 외출을 꿈꾼다.
그리고 나목은 지난 기억을 그침없이 쓸어버렸다.
화려한 지난 시간은 물러났지만, 이제는 그렇게 오랜 시간 냉정하고 무심하고 박제시킨 생각들을 시간 뒤에 걸어두고 그냥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날들의 생각과 시간으로 얼굴가득 미소가 번지는 행복한 시간의 일들로 시작하고 싶어한다.
늘 아끼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안아주는 따뜻한 우리였으면
좋겠어, 늘 그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변함없이 소중한
사랑스런 우리였으면 좋겠어,기쁜 일도 슬픈일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생각만으로 위로가 되는 편안한 우리였으면 좋겠어,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밤하늘 가지 끝에 쉬고 있는 달빛에 약속하고 싶다.
행복한 인연들을 기억하며 사랑으로 가득 찬 꿈을 꾸고 싶다.
그리고 나목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내의 가지마다 소망의
꽃이 피어있어 나에게는 싫증이 나지 않는다.
나목 몇그루가 뜰이나 언덕에 있으면 스산해 보이지도 않고, 겨울 야산이나 들이 황량하지 않아 평온함을 느낀다.
가까이 있어 겨울을 견디기가 쉽고, 눈에 보이지 않은
많은 것들을 나에게 보여준다.
조용히 있으면서 높은 차원의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고,
무한한 공간에서 마음 껏 자유를 누리는 벌거 벗은 나무라 해서 슬퍼거나 애석하거나 그런 기색이나 표정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노(老)와 사(死)에 대한 괴로움이 없어 보인다.
사(死)에 대한 무감각으로 초탈한 모습이 생(生)과 사(死)에 대한 체념이 엿보이고 완성의 영역처럼 거룩해 보이기에 나는 겨울 나목을 인내의 소망이 꽃피는 나무로 기억한다.



베스트 담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