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공전사(打共戰士) 고(故) 이재수 1주기를 맞아...
건국-전란-중흥-민주발전의 역정을 지켜온 그들... 명예가 회복되는 날, 자유통일은 성큼 다가올 것
이제는 이 나라에 없다. 저간의 사정을 잘 모르는 세인(世人)들은 바뀌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아예 싹마저 잘라버렸단다.
이 나라의 건국(建國) 즈음부터, 이어서 전란(戰亂)에 휩싸였던 시절에, 조국 중흥(中興)의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격변의 소용돌이에서도 오직 한 길을 걸어왔었다.
완벽하지는 못했다. 오해와 지탄이 따르기도 했었다. 굴곡과 변천과 변화도 있긴 했다. 그러나...
조국(祖國)의 파란만장한 역정, 그 뒤안길에서 오직 ‘공산주의를 타도’[打共]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自由守護]하기 위해서 진력해왔다. 몇몇 일탈자(逸脫者)를 제외한 그들 선후배 모두는 이 나라 안보(安保)의 최전선에서 말 그대로 ‘우직하게’ 임무에만 매달려 왔다. 이 나라의 적(敵)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와 이념·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인물들의 비판과 비난이 지속됐지만, 이 나라 ‘국민’(國民)들의 폭 넓은, 그러하되 소리 없는 신망(信望)과 성원(聲援)을 받았었다.
이제는 전설(傳說)로만 남은, 공식석상에 사라진 그들의 노래다.
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멸공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악마의 붉은 무리 무찌르고서, 영광의 통일 전선 앞장을 서리
굴복을 모르는 화랑의 후예. 국민의 힘이 되는 기무부대[특무부대/방첩부대/보안부대]
미덥다 튼튼하다. 정의의 후예. 살아있는 성벽이다. 기무부대!
노래 가사와 같이, 그들이 자유 대한민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과 함께, ‘국민의 군대’에 대한 진정성을 굳건히 지켜왔다는 사실(史實)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대한민국의 주적(主敵), 즉 북녘 ‘백도혈통’(百盜血統) 무리에게 ‘가장 악질적인 대공·방첩기관’이란 저주(咀呪)를 받아왔다는 것이 정설(定說) 아니겠는가.
특히, 그들이 “영원한 부대장”으로 가슴에 품어온 김창룡 장군이 주도했던 ‘국민의 군대’에 대한 ‘숙군(肅軍) 작업’은 6·25전란에서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었던 매우 중요한 일대 사건으로 꼽힌다. 전란 전(前)에, 또한 와중에 ‘국민의 군대’ 속으로 침투했던 좌익 프락치들과 불순분자들을 솎아냄으로써, 국군은 반공(反共)의 흔들리지 않는 보루(堡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일로 인해, 저 북녘의 전쟁 범죄자는 김창룡 장군을 일컬어 “민족해방전쟁을 그르친 원흉(元兇)”이라고까지 지목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이 나라가 ‘촛불’에 타들어가는 비상하고 혼란한 시기,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을 단순히 검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해체시켜버렸다. ‘군정보수사기관’으로서 당연히·마땅히 검토할 수 있는, 또한 검토해야만 하는 임무임에도 ‘적폐(積弊)’로 여론몰이를 해댔다. 그간의 정당한 정보수집까지도 ‘사찰’(査察)이라는 아주 비위에 거슬리는 용어를 써가며 반민주·반인권의 상징처럼 부각시켰다.
그리고 급기야 역사의 장에서 ‘파문’(破門)시켜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그들을 해체시킨 진짜 이유가 결코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그저 부수적(附隨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나라 ‘국민’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가장 악질적인 대공·방첩기관”이라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을 이끌던 장수(將帥)를 생트집 잡아 범죄의 굴레에 엮으려했다. 양손에 수갑(手匣)을 채워 보란 듯이 그 무슨 ‘포토라인’에 세웠다. 결국 구속영장 청구도 기각되었는데... 바로 1년여 전의 일이다.
지난 2014년 4월의 해난(海難) 사고를 범국민적인 힘을 모아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군대’가 해야 할, 그리고 지키고 주의해야 할 바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통수권자에게 조언(助言)한 활동을 문제 삼은 것이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더럽고 치사한 짓거리로 매도(罵倒)하여...
급기야 그 장수(將帥)는 정보활동의 정당함을 호소하고, 군인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2월 7일이다.
공개된 유서(遺書)는 이렇게 심경을 담담히 담아내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시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하니 정말 안타깝다...”
당시 아무개 논객은 이렇게 적었다. “자살(自殺)의 형식을 빈 타살(他殺)”이라고. 요즘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자살(自殺) 당했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많은 ‘국민’들이 분개(憤慨)하고 고인을 추모(追慕)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국민’들의 추모 속에서도 정작 그들은 나섬을 자제한 채 ‘통분(痛憤)의 눈물만을 흘리며 소리 없이 흐느껴야 했었다. 그들이 존재했던 시절에도 그랬듯이...
그들이 해체[2018년 8월]되고, 그들을 이끌던 장수(將帥)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아직도 덕수궁 대한문 옆에는 애국자들이 세운 분향소(焚香所)가 그대로 있어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또한 길지 않은 세월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반공(反共)의 성벽(城壁)이 완벽하게 무너졌다"는 개탄(慨歎)의 큰 한숨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잊혀진 그들의 노래가 이즈음에 더욱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군을 사랑했던 선후배 동료들께 누를 끼쳐 죄송하고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립니다...”며 마지막까지 겸손했던 고(故) 이재수 사령관의 명복을 빈다. 그가 흘린 피는 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70여년을 이어온 전통의 그들에게 무참하게 덧씌워졌던 낙인(烙印)과 불신과 오해를 씻어냈다고 감히 선언하면서...
그의 1주기(週忌)를 맞아, 그의 영전(靈前)에 앞의 1절에 이어 2절까지 그들의 노래를 바친다.
그들과 그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는 날, 이 땅의 자유통일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설 거라고 확신하며...
겨레와 국토 수호 우리의 사명. 청춘의 몸과 마음 모두 바쳤다
역사가 우리를 명령하는 날. 범같이 사자같이 달려 나가리
굴복을 모르는 화랑의 후예. 국민의 힘이 되는 기무부대
미덥다 튼튼하다. 정의의 후예 살아있는 성벽이다. 기무부대!
李 斧: 본보 객원논설위원
※ 상기 글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