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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시민교육

남북한 군사력 비교(8)-한국전쟁시 북한이 압도적 우세

미군 3만6,940명 포함 유엔군 총 17만 8,569명 전사, 중국군은 11만 6천명 전사...

 

1950년 북한에 의한 남침 전쟁시 군사력은 ▲육군은 대한민국 국군이 9만6,140명, 북한 인민군이 19만1,680명으로 북한 인민군이 1.99배 우세였으며, ▲해군은 국군이 7,115명, 인민군이 4,700명으로  대한민국 이 우세였고, ▲공군은 국군이 1,897명, 인민군이 2,000명으로 인민군이 1.05배 우세로 총 인민군이 병력면에서 1.89배 우세였다.

 

 

군사 전쟁무기는 ▲전차는 국군이 단 한대도 없었으며, 북한 인민군이 242대로 비교할 수 없고, ▲장갑차는 국군이 27대, 인민군이 54대로 인민군이 2.0배 우세, ▲야포는 국군 91문, 인민군 552문으로 북한이 6.07배 우세했으며, ▲대전차포는 국군 140문, 인민군 550문으로 북한 인민군이 3.93배 우세, ▲박격포는 국군 960문, 인민군이 1,728문으로 북한 인민군이 1.80배 우세하였다.

 

따라서 병력 면으로는 1.89배 우세이나, 군사무기 면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북한 인민군의 전력 우세로 인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 이후 단 1개월만에 경상북도 일부 및 경상남도를 제외하고 대한민국영토가 북한 인민군에 의해 강제로 점령되었다. 

 

 

6.25 북한에 의한 남침이후 1953년 전전때까지 국군은 ▲전사자 13만7,899명(학도병 제외), ▲부상 45만742명, ▲실종 및 포로 3만2838명이었고, 북한 인민군은 ▲전사자 52만명(학도병 제외), ▲부상 12만명, ▲실종 및 포로 2만9천명이었으며, 북한 인민군 포로 중 70~80%는 반공포로라는 이름으로 거제도에서 석방되어 대한민국에 거주했다. 현재 거제도에 '거제도 포로수용소' 기념공원이 있다.

 

 

국군이외 유엔 16개국에서 참전한 유엔군은 전사자 4만670명, ▲부상 10만4,280명, ▲실종 및 포로 9.931명이었다. 반면에 중국군(중공군)은 전사자 11만6,000명(학도병 제외), ▲부상 22만명, ▲실종 및 포로 2만9천명이었다. 

 

유엔군으로 파견된 16개국 중 ▲미국이 178만9천명이 참전하여, 36,940명이 전사하였고, ▲영국 5만6천명 참전에 1,078명이 전사했고, ▲카나다가 25,687명 참전에 312명이 전사, ▲터키가 14,936명 참전에 741명 전사, ▲호주 8,407명 참전에 339명 전사,  ▲필리핀 7,420명 참전에 12명 전사, ▲태국 6,326명 참전에 129명 전사, 에티오피아 6,037명 참전에 122명 전사, ▲네덜란드 5,322명 참전에 120명 전사, ▲콜롬비아 5,100명 참전에 163명 전사, ▲그리스 4,992명 참전에 188명 전사, ▲벨기에 3,498명 참전에 104명 전사 등으로 나타났다. 

 

 

6.26 북한에 의한 남침 전쟁동안 민간인 피해를 보면, 대한민국은 사망·학살이 37만3,599명, 부상이 22만9,625명, 납치·행불이 39만7,744명 등 총 99만968명이었고, 북한은 총 150만명으로 집계되었으나,  6.25 남침전쟁 전·후로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탈출한 피난민 추정을 90만명(이북오도청 고위관계자)으로 계산시 북한의 피해는 60만명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6.25 남침전쟁 동안 대한민국은 민간인의 경우, 약 40만명의 인적 피해를 본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