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도교육청)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강원지부와의 단체협약 실효를 선언하면서 교육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신경호 교육감은 2021년에 체결된 단체협약의 실효를 선언했고, 이에 대해 전교조 강원지부는 10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즉각 반발하며 다음날인 31일부터 도교육청 앞에서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이번 실효 선언과 관련한 갈등은 지난 2023년 9월 11일 도교육청이 전교조 강원지부에 단체협약 개정 요구안을 통보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년 여 기간 동안 10 차례 협의를 진행했지만 도교육청 측이 요구한 430건의 개정 사항 중 협의 과정을 통해 합의에 이른 것은 27건에 불과했다. 이렇게 협의 과정의 진전이 더딘 것에 대해 도교육청은 "개정 요구의 취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노조의 권리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오히려 89건의 조항을 더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며 전교조 강원지부가 협의 의사가 없었음을 시사했고, 전교조 강원지부 관계자는 "교육청이 430건 전체에 대해 '교섭 의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도교육청 측에서 협의 의사가 없었음을 지적했다.
한편 도교육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교섭 의제가 아니라는 표현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교원노조법」 제6조제1항을 위반하는 등 불법적인 내용은 교섭 의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실질적으로 협의를 거부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노조 측에서 협의를 통해 개별 개정 요구 건에 대해 교섭 의제가 될 수 있음을 피력했어야 하지만, 노조 측은 이와 같은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단체협약 내용이 「교원노조법」 제6조제1항('임금, 근무 조건, 후생복지 등 경제적ㆍ사회적 지위 향상')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도교육청의 주장을 살펴보기 위해 본지에서 개정 요구안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교섭의제가 될 수 없다는 주요 내용은 다음 4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었으며, 대체로 취지에 맞게 작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교육청 및 학교의 고유 권한 침해
인사, 교육과정·평가, 학교 운영, 행·재정적 지원, 학생 인권 규정 등의 고유 권한 침해
2. 전교조 지부의 독점적 지위 보장과 과도한 개입
단체협약 체결 독점권, 정책(조례·규칙·규정) 결정과 인사 관리, 특목·자사고 설립·운영 등
교육행정 전반에 걸친 과도한 개입
3. 교육청 권한을 넘어서는 요구
학생·학부모 대상 노조활동 보장, 단체협약 불성실 이행자 행정처분 요구, 사학법인의
재단 운영권 및 인사권 침해 등
4. 상위법·규정 등과의 중복
교육공무원법, 교육공무원인사관리규정, 공무원여비규정, 교원휴가에관한예규,
공무원연금법, 국가공무원법, 사립학교법, 공익신고자보호법 등
신경호 교육감의 실효 선언 입장문에서, 네 문단에 걸쳐 밝힌 학생 학습권과 관련한 단체협약의 문제점(일제 형식 평가, 경시대회, 도교육청 및 지원청 표창 수여)은 '1. 교육청 및 학교의 고유 권한 침해' 분류 하위의 교육과정·평가, 학교 운영으로 개정 요구 사항 중 극히 일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아래 문단에서 볼드체로 작성된 "학교는 노조원의 직장이기 전에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내용이 선언문의 핵심으로 파악된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단체협약 개정 요구안 발췌본이다.
다음은 이들 조항이 "학교는 노조원의 직장이기 전에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이나 목표에 부합하는지 검토한 내용이다.
- 제35조제6항, 제45조제1항, 제47조제3항, 제53조제1항
각종 고사, 경시대회 등 학생 평가 수단을 폐지하여 각 학교의 교육 서비스 수준을 비교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한하고, 학생·학부모 대상 만족도 조사 조차 응답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마저 취하지 못 하게 함으로써 교사들의 교육적 성과 평가를 제한하고 있다. - 제5조제6항, 제43조제7항, 제47조제3항
학내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노조 활동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원의 학내 사모임 조직 형성을 제약하고, 도교육청은 학생·학부모 대상 만족도 조사 응답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조항들과 대비된다. - 제31조제2항, 제32조제6항, 제32조제8항
교사는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 따라 통상 방학 중 근무지(학교) 외에서 연수(41조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는 근무지 출근 의무만 없을 뿐 여전히 근무에 대한 의무는 있으며, 급여 또한 학기 중과 동일하게 지급되기 때문에, 방학 중 복무 상황에 41조연수를 결재 받았다 하더라도 일과시간은 교육청의 감독 하에 있다. 그러나 단체협약에서는 연수물을 제출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교육청의 감독 업무를 제한하고 있다. 공무외 국외자율연수 보고서 제출 폐지와 법정연수 이외의 연수에 대해서는 등록부를 작성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제32조제1항
「교원휴가에 관한 예규」 제4조제1항에 따르면 연가는 수업 및 교육활동 등을 고려하여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수업일을 제외하여 실시하도록 하고 있으며, 공무원보수 등의 업무지침에 따르면 연가보상비 지급제외자를 '교육공무원(방학이 없는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 제외)'으로 정하고 있다. 이처럼 교사의 연가는 학생의 학습권을 우선하기 때문에 통상의 공무원이나 일반 근로자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교사는 학사 일정을 고려하여 계획 하에 연가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단체협약에서는 연가뿐 아니라, 지참(지각)·외출·조퇴 등에 대해서도 사유 기재, 사전 구두 보고, 대면 결재 등을 하지 않도록 권장함으로써 학사 일정 운영의 관리책임자인 학교장과 교감의 감독 업무를 제약하고 있다. - 제17조제4항, 제31조제1항
일반행정에 해당하는 교육행정과는 달리 교육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교무행정 업무들은 이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교과 및 생활 교육, 학급 운영 등만 하겠다는 것은 교육활동의 연속성을 저해할 수 있는 요구로 볼 수 있다. 또한 각 학교 별 상황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는 시간외근무를 무조건적으로 최소화하도록 하고, '불가피'란 표현을 사용한 것 등을 고려할 때 국가 기반 산업인 공교육 서비스 종사자로서, 교육 공무원으로서의 직무 수행 의무와 상충되는 면이 있다. - 제19조제1항, 제31조제4항, 제34조제17항
학교 안전 점검 체크리스트 작성, 학생 등교 교통지도 등의 간접 교육활동을 기피하면서도, 학생들을 위한 교육 환경 개선에도 현실적으로 부족한 예산·시설 여건인 학교가 많음에도 교사를 위한 남녀 탈의실, 샤워실, 휴게실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도교육청도 일부 개정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은 도교육청이 제시한 「교원노조법」 제6조제1항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조항들이다.
- 각종 감사 및 학교평가 시 NEIS에 있는 장부는 서면으로 중복하여 요구하지 않도록 하여 학교 구성원에게 자료 및 보고서 작성의 부담을 이중으로 지지 않도록 한다거나(제34조제3항)
- 지원청에 학교폭력 전문가를 포함한 전담팀을 구성해 각급 학교를 지원하게 하여 교원의 학교폭력 업무 부담을 줄이고 피해학생 또한 보다 전문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제60조제1항,제2항)
- 최근 인천 모 특수교사가 업무 과중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끊은 사건을 통해서도 조명된, 열악한 특수교육 환경을 개선하자는 내용(제78조) 등
한편 서울, 경기, 전남 등 타 시·도 교육청-전교조 지부 간 단체협약을 발췌본과 동일한 기준으로 검토한 결과, 1. 연수물 제출, 2. 복무 결재, 3. 행정 업무 경감, 4. 노조 활동 보장 등 유사한 조항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강원교육청-전교조강원지부 단체협약에서 나타난 것처럼 노조 측의 과도한 요구가 반영되어 있지는 않았다. 특히 행정 업무 경감에 대해서는 '교무 행정업무 최소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교무행정 업무의 중요성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으며, 경기지부의 경우 현실적인 행정업무 경감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작성하였다. 한편, 전남지부의 경우에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노조활동, 그리고 강원지부와 마찬가지로 단체협약 체결 독점권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하여 양측의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0월 31일 양양고등학교에서는 신경호 교육감과 전교조 조합원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전교조를 규탄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고, 이 갈등은 정치권으로까지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양측의 대치 상황을 두고, 교육청 관계자는 "서로 자극하는 행동보다는 합의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전교조 강원지부 관계자 역시 "실질적인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측 모두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과열된 정치적 대립을 넘어서서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들의 권익을 모두 고려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