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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시민교육

서울대에 "5.18 유공자들에 의한 5.18 진상조사보고서, 원점에서 다시 조사하라!"는 대자보 게재

7월 15일자 트루스헤랄드 보도자료에 의하면, 서울대학교 게시판에 5.18 유공자를 다시 조사하라는 대자보가 붙었다고 보도했다. 트루스헤랄드는 서울대동문출신이 모여 만든 시민단체인 트루스포름이 발행하는  인터넷신문이다. 이날 보도된 기사 전문은 아래와 같다

 

 

5.18 유공자들에 의한 5.18 진상조사보고서, 원점에서 다시 조사하라!

 

지난 문재인 정권이 제정한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5.18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원회)'가 종합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는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영할 것을 비롯한 11개의 권고사항을 두고 있다.

 

5.18의 진실은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에서 구성된 5.18진상조사위원회가 진실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적절한 조직인지는 의문이다. 진상규명이라는 명목상의 목적과는 달리, 해당 보고서와 이를 작성한 진상조사위원회는 사실상 5.18 성역화의 정치적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다.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내고 이를 국가권력을 통해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조사위원회의 출발부터 그랬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5.18의 민주화 내러티브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그동안 공지의 사실로 인정된 광주교도소 습격사건, 육군 제20사단 차량피습 및 아시아자동차 피습사건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북한 특수군 개입과 같은 건으로 병합했다. 그리고 북한의 역할은 축소ㆍ배제됐다. 나아가 혁명을 위해서는 200만 명 정도 죽여야 된다던 대한민국 내부의 사회주의 혁명세력의 역할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조사결과가 철저하게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는 감추거나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은 명백하게 허위임에도 불구하고 증거로 채택하여 조사 결과를 조작해 허위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조사 내용 자체의 재조사와 검증이 필요하다.

 

특별히 이번 보고서는 헌법전문에 5.18 정신 반영을 권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권이 제정한 '5.18 역사왜곡처벌법'과 함께 보고서에 반대되는 주장이나 의혹을 허위사실로 규정하여 처벌의 근거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5.18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관점을 강제하고 겁박하는 것이 5.18 정신인가? 이것이 민주적인가? 5.18 정신에 반하는 것은 아닌가? 5·18이 진정 모든 국민이 존경하는 민주화운동이 되려면 그에 대한 반론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법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정치적 해석이 갈리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평가를 법으로 강제하고 겁박하는 것이 바로 검열이고 독재다.

 

이에 트루스포럼은 보고서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촉구하며 아래 사항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1. 조사위원회의 편향성

 

5.18진상규명특별법 제14조는 위원의 제척ㆍ기피ㆍ회피에 관해 규정하면서 위원 또는 그 배우자나 배우자였던 사람이 진상규명사건의 가해자 또는 희생자ㆍ피해자인 경우 해당 심의ㆍ의결에서 제척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5.18 유공자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으로서 객관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그런데 조사위원장인 송선태 위원장부터가 5.18 유공자다. 송선태 위원장은 5·18 발생 일주일 전 ‘예비군 무기고 접수’와 ‘도청 점령’을 사전 모의한 이른바 ‘자유노트’를 직접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조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5.18 유공자이거나 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5.18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과 보고서의 객관성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법에서 규정한 위원의 자격부터 제대로 갖추지 못한 위원회가 어떻게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5.18의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5.18 유공자 명단부터 공개해야 한다. 특별히 이번 조사과정에 참여한 5.18 유공자 및 관련자들의 명단은 조사의 객관성을 위해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 유공자 선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서훈 평가 업무를 광주광역시에서 국가보훈부로 이관해야 하는 것도 상식이다.

 

개별 사안에 대한 조사결과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최고 조사위원회의 인적구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현 야권 인사 6명과 여권 인사 3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공정한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권에 의해 구성된 5.18진상조사위원회가 5.18 성역화를 위한 거수기 역할을 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이유다.

 

2. 5.18에 대한 북한의 개입에 관해

 

5.18에 대한 북한의 개입에 대해 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번 보고서도 북한 특수군 개입을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하며 진상규명이 완료된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종합보고서가 스스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보고서의 조사대상인 북한군의 범위는 "북한군 신분으로 침투한 간첩이나 공비 1〜2명의 수준이 아닌 ‘최소한 수 백명 규모의 북한 특수군 부대’로 한정"되어 있다.(종합보고서 p.1037) 위원회의 심의·의결도 그러한 전제 위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보다 작은 규모의, 소규모 특수군 잠입 가능성은 보고서의 조사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고서가 북한 개입 자체를 음모론 수준으로 매도하는 주장들의 근거로 인용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진실의 규명은 다수결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일정한 수준의 북한의 개입은 당연한 상식이다. 규모와 정도의 문제다. 이를 명확히 밝히는 작업은 북한이 열리기 전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북한은 5·18을 적극 찬양하고 있다. 최악의 독재국이자 반민주국인 북한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찬양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단순히 북한이 체제우위를 선전하고 내부결속을 다지며 남한을 흔들기 위한 선동일 수도 있고, 실제로 일정한 개입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한편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5·18의 북한 개입을 기정사실로 믿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관여가 어느 정도인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남한의 좌익세력과 이미 침투해 있는 고정간첩 일부가 활동했을 뿐이고 5.18은 순수한 광주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됐으며 광주시민들은 북한의 오판을 적극적으로 경계했다고 지적한다. 또 어떤 이들은 광주 시민들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적극적인 침투와 배후조종으로 5.18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12·12를 일으킨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의 명분을 얻기 위해 일부러 소요사태를 일으키고 북한군의 개입을 의도적으로 용인 또는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후계구도를 선점하기 위한 김정일의 단독행동으로 분석한다. 신군부가 프락치를 파견해 평화적인 시위를 과격하게 유도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주장들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최근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인터뷰에서 재직 당시 북한의 5·18 개입을 직접 확인하고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고 증언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안기부장으로 근무하며 5.18의 성격을 민주화 운동으로 변경하는데 큰 역할을 한 당사자의 발언이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5.18에 대한 북한의 개입을 확신하면서도 순수한 민주화운동의 측면도 있음을 긍정했다. 하지만 헌법전문에 포함시키자는 논의는 정치권의 놀음에 불과하다며 반대했다.

 

북한의 개입 여부와 그 수준에 관해서는 보다 자세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과장된 주장이 난무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자유로운 연구와 토론을 통해 규명할 수 있는 것이다. 5.18을 성역화하고 이에 반하는 주장에 린치를 가하거나 처벌하겠다는 자세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해석이 갈리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평가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바로 독재다. 일정한 수준의 북한의 개입이 당연히 의심되는 상황에서 5.18을 순수한 민주화 운동으로 강제하며 성역화하려는 저의가 도대체 무엇인가?

 

3. 5.18, 남민전 등 사회주의 혁명세력의 개입은 없었나?

 

북한군 논란에 가려진 보다 중요한 이슈가 있다. 남한 내부에서 혁명을 추구했던, 남민전을 위시한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의 개입은 없었는가?

 

75년 월남패망에는 월남 내부의 사회주의자들인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의 역할이 컸다. 외세를 몰아낸다는 명목으로 민족해방전선을 만들고 이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규합했다. 여기엔 뜻을 함께하는 비공산주의자들도 다수 참여했다. 하지만 베트콩의 70%는 북베트남 군인이었다. 전형적인 통일전선전술이다. 월남 패망에 희열을 느낀 남한의 사회주의자들은 통일전선전술의 위력을 실감하고 월남이 패망한 이듬해인 76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을 모방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을 결성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내부에서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을 추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민전에 연루된 많은 인사들이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민주화 유공자로 보상까지 받았다.

 

남민전 관련자들은 혁명 자금 확보를 위해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의 집을 무단 침입하고 경비원을 칼로 찌르는 강도상해 사건을 저질렀다. 이 사건 주동자의 하나인 이학영은 현재 대한민국 국회 부의장이다. 시인으로 알려진 김남주 역시 사건의 주동자다. 84년 경 교도소에서 김남주에게 직접 사상교육을 받은 김정익 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2백만 명 정도 죽여야 된다고 했다. 이런 그가 노무현 정권에서 민주화 유공자로 둔갑했고, 2023년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승소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김남주는 '학살'이라는 시로 5.18을 지지하고 찬양했다. 전남대는 김남주의 치열한 저항행위와 고귀한 시정신을 기린다며 2019년 김남주기념홀을 건립했다. 2020년엔 '김남주 뜰'을 조성했다. 5.18은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김남주와 남민전은 걸러내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5.18은 자생적인 사회주의 혁명인가? 광주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은 미국의 좌파교수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5.18을 20세기의 파리코뮌이라며 찬양했다. 파리코뮌은 1871년 70일간 존속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정부다. 5.18은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봉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5.18을 공산혁명에 비유한 학자에게 명예시민증을 부여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4. 김일성과 지프코프의 대화

 

75년 6월, 김일성은 불가리아를 방문했다. 이때 김일성이 불가리아의 독재자 토도르 지프코프와 나눈 대화 내용이 현재 윌슨센터에 공개되어 있다. 해당 자료는 불가리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외교국제관계 부서장인 콘스탄틴 텔랄로프가 작성해서 동독 대사관 등에 공유한 것을 동독공산당 중앙위원회 비서 헤르만 악센에게 보고한 것이다. 해당자료는 월남 패망 이후 김일성의 대남노선을 살펴보는 귀중한 자료다. 김일성은 월남이 패망하기 직전인 75년 4월 중순, 마오쩌둥을 만나 무력통일에 대한 승낙과 지원을 받으려 했지만 미국과 관계개선을 꾀하던 마오가 이를 거절했다. 지프코프와의 만남은 이 이후에 진행된 것이다.

 

이 자료에 언급된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은 신민당(New Democratic Party)과 관계를 갖고 있으며, 다른 정당들 및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통일전선(인민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남한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통일혁명당(통혁당, Revolutionary Unification Party)은 약 3천명 수준이다. 박정희와 공개적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지도자들의 제거를 초래할 것이므로 혁명당원들에게 합법적인 야당에 합류하여 노동자와 농민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남한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의 중요한 동력은 학생들이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는 미군철수, 박정희의 국제적 고립, 그리고 남한에서의 봉기가 필요하다. 미군이 존재하는 한 봉기의 가능성은 항상 있다. 남한의 민주세력들이 우리 말을 듣지 않고 봉기할 가능성도 항상 있다. 원문의 링크와 번역본은 아래에 공유한다. bit.ly/윌슨센터자료

 

참고로 80년대 초 운동권으로 활동하다가 전향한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대남방송의 기본적인 기조는 합법투쟁이었다. 지속되는 공안사건으로 핵심 인원들이 계속 제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혁명세력의 역량 보전을 위해 무리한 투쟁방식 보다는 합법투쟁을 계속 주문해 왔다고 한다. 이들은 이러한 견지에서 5.18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개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기도 한다.

 

6.25라는 전면전에서 실패한 김일성은 소규모 게릴라전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한 쿠바를 동경했다. 김신조 사건을 비롯해 6,70년대에 발생한 무장공비 사건들은 쿠바를 본받아 게릴라전을 준비하고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의 강력한 공안기조로 합법투쟁을 지향해 왔다. 그러나 79년 10월 박정희 시해사건 이후 북한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는 추가적인 연구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위의 자료에서 김일성이 남한의 자생적인 봉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 자료의 신빙성을 비롯해서 10.26이후 남한의 자생적인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 또한 연구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5. 김대중 구명에 앞장섰던 뉴욕타임즈 도쿄지국장, 헨리 스콧 스톡스

 

뉴욕타임즈 도쿄 지국장 헨리 스콧 스톡스는 5.18 당시 광주를 직접 취재했고 김대중과 12번 이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대중 구명에 가장 앞장선 사람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한국 민주화 운동의 중심인물로 알려진 것은 그와 뉴욕타임즈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토록 김대중을 지지했던 그가 죽기 전 쓴 책에서 ‘김대중에게 완전히 속았다. 광주사건은 김대중이 기획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아래 링크에 해당 자료를 공유한다. Henry Scott Stokes, Fallacies in the Allied Nations' Historical Perception as Observed by a British Journalist, November 2016, Hamilton Books, pp.85-89 / bit.ly/헨리스콧

 

적어도 김대중 구명에 발 벗고 나섰던 외국인 기자가 죽기 전에 이러한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는 사실은 5.18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물론 그의 주장 역시 마땅히 검증과 평가를 받아야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하지 않을 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은 강요될 수 없기 때문이다. 5.18이 진정한 민주주의 운동으로 모든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어떤 입장을 강제하고 겁박할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5.18에 관한 모든 의혹을 해소하고 국민 모두의 동의를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5.18 정신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무엇이 5.18 정신인가?

 

6. 광주민중항쟁 연구가 김영택씨가 언급한 '복면부대'

 

김영택씨는 전남 출신의 동아일보 기자로서 5.18 당시 현장을 취재했다. 2005년, 5.18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연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민중항쟁의 관점에서 5.18을 이해했다. 이번 종합보고서도 많은 부분에서 김영택씨의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김영택씨는 자신의 박사논문에서 광주시위를 강경하게 이끌어간 정체불명의 '복면부대(서울권 대학생 수백명)'에 대해 여러 곳에서 언급하며 자세한 설명과 분석을 시도했다.(김영택, 5.18광주민중항쟁연구,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4, pp.217~229) 김영택씨는 이들 '복면부대'를 평화적인 5.18 시위를 과격하게 유도하기 위해 파견한 신군부의 프락치로 의심한다. 당시 광주일원은 계엄군이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대규모의 대학생들이 들어오기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광주진입을 시도하던 다수의 대학생들이 저지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복면부대'가 이미 침투해 있던 북한 특수군이라는 것이 지만원씨 등의 주장이다.

 

종합보고서는 김영택씨 취재기록과 연구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복면부대(서울권 대학생 수백명)에 대해서는 김영택씨가 세간의 소문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평가하면서 '복면부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있다.(직바-15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특수군의 광주일원 침투 주장사건, pp.79~85 ) 하지만 김영택씨의 단행본 「10일간의 취재수첩」(1988), 5·18 직후 동아일보 연재 단행본 「광주5·18민중항쟁」(1990), 박사학위논문 「5·18광주민중항쟁 연구」(2004) 등에는 복면부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하면서 이들의 활동을 분석했다. 그리고 신군부가 파견한 프락치라는 추정을 제시하고 있다.(김영택씨의 박사논문 p.223 각주 65)

 

김영택씨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그에게 직접 다시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5.18 현장을 취재한 기자로서 사실에 입각해 5.18을 치밀하게 분석해 온 베테랑 연구자가 당연한 사실로 전제한 '복면부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타당한 결론인지는 의문이다. 그가 단순한 소문을 사실확인 없이 그렇게 자세히 분석하고 연구한 것이라면 그의 모든 기록들의 신빙성이 문제될 수밖에 없다.

 

복면부대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이들이 누구인지에 관한 생각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김영택씨의 추정처럼 신군부의 프락치일 수도 있고, 미리 들어와 있던 북한이 파견한 요원이거나 남한의 자생적인 혁명가 집단일 수도 있다. 그리고 복면부대의 존부에 관해서도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복면부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 진상규명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종합보고서의 입장이 과연 합리적인지는 의문이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그와 다른 주장을 허위사실로 규정하고 처벌하려 든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독재적인 발상이다.

 

7. 21일 13시, 권용운 일병의 사망과 계엄군의 전남도청 조준사격 및 시민군의 무기고 습격 시점에 관해

 

5.18은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한 민중의 자연발생적인 무장봉기라는 것이 5.18 민주화 내러티브의 핵심이다. 신군부를 헌법파괴세력으로 본다면 헌법파괴세력의 폭력에 대한 민중의 자연발생적인 무장봉기라고 할 수 있다. 21일 13시, 권용운 일병의 사망과 이로부터 이어진 계엄군의 무차별 조준사격으로 인해 분노한 시위대가 무기고를 급습하여 무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5.18을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의 설명이고 믿음이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시민군의 무기고 습격 시점에 관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21일 13시 이전에 무기고 습격이 있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진술과 증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사건[직바-7] p.109-119) 5.18 민주화 진영에서 이번 보고서가 불편한 이유다. 발포경위 및 책임소재에 대한 규명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은 것도 그들에겐 만족스럽지 못한 결론이다.

 

이번 조사위원회는 문재인 정권에 의해 구성된, 그들에겐 가장 유리한 위원회 구성이었다. 이런 위원회에서 무기고 습격시점을 그들이 원하는대로 결론 내지 못하고, 발표명령 및 책임자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21일 13시 이전에 있었던 무기고 습격은 시위대의 무장이 사전에 준비된 것이라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5.18이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한 민중의 자연발생적인 무장봉기라는 민주화 내러티브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5.18은 국가폭력에 대해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된 무장봉기가 아닌, 사전에 조직된 무장봉기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 글을 마치며

 

5.18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뇌관이다. 섣불리 접근하기 힘든 주제다. 이번에 발행된 종합보고서도 1300여 페이지에 달하고, 20여개 주제에 대한 수 백 페이지의 독립적인 조사결과보고서가 존재한다. 5.18에 관한 기본적인 입장과 방향성, 그리고 종합보고서의 기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5.18에 관해 신군부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면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잘못된 이념에 경도되어 남한 내부에서 월남과 같은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역할이 있다면, 이 또한 분명히 밝혀야 한다.

 

5.18에 관해서는 서로 양립하기 힘든 극단적인 주장들이 대립한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은 정치적 선동과 좌우를 떠나 모두가 엄정히 규명해야 할 과제다. 나아가 추가적인 연구와 조사가 필요한 내용을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수결로 밀어붙이고 이에 반대되는 의견이나 주장을 범죄화하려는 시도는 당장 멈춰야 한다.

 

모든 죽음은 안타까운 것이다. 군경의 죽음도 시위대의 죽음도 모두가 애석한 죽음이다. 잘못된 사상에 빠져 대한민국에 대항하며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인간으로서 애석함을 표할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정면으로 충돌한 한반도의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한 가족 안에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한 비극과 아픔이 있었다. 우리의 역사이고 품어야 할 아픔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저주하며 월남을 본받아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던 사람들을 희생자나 유공자로 기리고 보상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5.18엔 이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5.18이 국민 모두의 존경을 받는 민주화 운동이 되려면,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민주화 운동으로 지지를 받으려면, 월남을 본받아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던 반대한민국 세력을 걸러내는 자정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순수한 민주화 운동으로서의 5.18을 함께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 전문에 넣자는 논의도 그런 이후에 가능할 것이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권 당시 설치된 제주4.3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는 4.3의 본질은 적극적으로 가려버리고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둔갑시켰다. 지금 제주4.3평화공원에는 대한민국에 항적한 무수한 폭도들이 희생자로 둔갑해 위패가 모셔져 있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까지 죽인 사람도, 옆마을 사람 수십명을 죽창으로 찔러 죽인 사람도, 심지어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까지도 희생자로 둔갑해 있다. 어떤 이는 부모님을 죽인 폭도의 이름이 부모님의 존함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공산주의라는 거짓에 빠져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고 항적한 사람들의 죽음도 애석한 일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희생은 반드시 보상하고 기려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항적한 사람들을 희생자로 기리고 보상할 수는 없다. 비슷한 과오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진실에 집중한다면 5.18은 더 이상 좌우의 싸움이 아니다.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시각들 속에서 우리는 과연 5.18에 관한 통합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해묵은 상처들을 싸매어 치유하고 하나 될 수 있을까? 한국 정치의 뇌관일 수밖에 없는 이 거대한 과제 앞에 먹먹한 가위눌림마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다만 우리의 논의는 진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 진실 가운데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회복과 치유, 화해와 상생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2024.07.15

 

서울대 트루스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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