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작 내 나이 스무살 첫사랑은 모든 것이 서툴렀다. 내 나이 스무살 첫사랑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내 나이 스무살 첫사랑은 가슴도 얼굴도 늘 붉었다. 내 나이 예슨살 첫사랑은 보고픔과 기다림이다. 내 나이 일흔살 첫사랑은 망설임에 후회하는 그리움이다. 내 나이 여든살 첫사랑은 나이먹고 약해져서 외로움만 남는다.
박재형 작 공연히 마음이 분주해지는 겨울과 봄사이 야무진 목적도 촘촘하게 짜여진 계획도 없는 여정은 두렵지만 자유로움을 안다. 차창밖 풍경은 물내와 흙내로 가득하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빈밭, 숲속에도 부지런한 봄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겨우내 외롭던 산골에 냉이 향내가 가득하고 나물캐는 늙은 아낙의 어깨에 아지랭이가 핀다. 봄에 깨어나는 물소리 만큼 절절한 그녀의 삶이 바람이 꽃에게 속삭이는 봄의 설렘도 적막한 가슴일까? 앞산 양지바른 무덤위의 햇살이 애써 기억하지 않는 기억들을 떠 올리며 내 청춘의 실패를 되돌리려 속삭인다. 반뼘도 안되는 작고 여린꽃잎에게 손짓을 하며 바람은 말을 건넨다. 왠지 마음이 설레지 않느냐고? 무채색 강가에 봄비가 내리고 침묵된 시간이 차창에 어리여 오롯이 외로움, 나를 감싸면 새봄에 나는 돌아가 구석진 마음 한 곳에 고운 꽃 한송이를 피워보고 싶다. 그리고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 활짝 웃고 싶다.
박재형 작 지붕위에 떨어져 처마밑으로 흐르는 빗소리에 뒤척이다 밤을 지샌 적이 있나요?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채 길을 나서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난적이 있나요? 마른 풀 향기와 비릿한 물냄새가 흩어지는 9월의 마지막날 따가운 햇살에 숨죽이 듯 일렁이는 황금 나락의 들판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그리운 사람을 그려보지만 잊혀진 얼굴이 기억되지 않는 그리움으로 가슴 아려본 적 있나요? 가을비가 머리를 타고 눈을 적시고 내 가슴에 흐르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마음이 저미고 쓸쓸한 가을을 사랑하지만 아리한 기억들로 나를 잊어버린 적이 있나요? 오늘 고요하고 달무리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을 기억하세요.
박재형 작 한낮 빨래 장대 위에 걸린 해가 해질 녘 대문 밖으로 넘어가고 부는 바람이 서늘하지는 않은데 내몸에 불어온 바람이 공연히 빈 가슴 서늘하게 하는 것을 내 어찌 마다 하겠나. 누군가 불러 주면 황급히 뒤돌아보고 친절이라도 보내 오면 금세 그 손잡고 뒤도 안 보고 따라나서고 싶은 허전함. 하루에도 몇 번씩 기쁨과 슬픔에 흔들리며 춤추는 나이다. 새로운 인연 기쁨으로도 오고 슬픔으로도 오니 이미 온 인연 가볍게 흘리지 말고 새로운 인연 즐겨 만들지 말게. 오랜 벗 마주하여 따뜻한 차한 잔 즐겁고 정다운 이야기 나누고 그냥 그렇게 지내다 보면 무심한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간다네. 이제는 남에게 불편한 불편한 마음 갖지 말고 남에게 야속한 시선도 보내지 말게 세월이 흘러 그 때도 우리가 지금의 이 모습이겠나. 이미 겉은 세월따라 바뀌고 변한다해도 속 마음은 이제나 저제나 한결같아서 그냥 지금처럼 이 모습 사랑하며 지내다 보면 내 마음 언젠가 모두에게 닿을 것을 믿네 아직은 젊고 믿음직스러우며 아름다운 삶을 꿈꾸지 않는가. 훗날에 지금처럼 서로를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는건 그래도 진실했던 우리들이 아니겠는가?
박재형 작 라일락 향기가 짙게 번지고 붉은 장미가 이집 저집 담장을 넘나들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계절, 신록이 푸른 산을 덮어 하늘이 작아 보이고 민들레 꽃이 솜사탕 같은 홀씨를 만들어 바람에 내 사랑을 전해주는 날들이다. 눈가 가득 실주름을 띄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씽긋 웃는 당신같이 내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 한걸음에 달려오는 그냥 기쁜 일이 있을 것 같은 가슴 설레는 행복한 5월입니다.
박재형 작 온 산이 푸른 5월의 초록을 보라. 태양의 정열은 미루나무잎을 팔랑이고 찔레꽃 향기가 청보리 언덕에 내리는 파란 하늘 향해 싱그러움으로 편지를 쓰자. 얼굴 가득 햇살이 다가와 말한다. 머문 듯 가는 세월인데, 나와 함께 걷는 느낌이 좋았던 사람 그냥 기다려지는 사람과 한적한 찻집 창가에 앉아 상상의 시간을 그려보며 편지를 쓰자. 꽃피는 날, 새들의 노래들으며 보고 싶은 사람에게 잔잔한 미소를 품고 나눈 것은 많지 않아도 사랑 한 줌이 인정스러워 그리움과 정겨움을 묻혀 편지를 쓰자. 5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 너의 손을 잡고 따듯한 고운 정을 하나 새긴다. 세월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여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이 될 지라도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모란이 피고 뻐꾹새 소리가 내려 앉는 초록 대지에 알 수 없는 보고픔과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행복한 얼굴이 떠오르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고백의 편지를 쓰자.
시인 박재형 묵은 해는 언제나 추웠다. 새해는 꿈을 갖고 더 참으며,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고싶다. 아니 내가 새로워져 새해를 맞고 싶다. 새해 아침에 데운 술 한잔, 소고기 뭇국 한그릇에 한 살 더한 만큼 험한 세월을 착하고, 슬기로움에 빛나는 태양의 아침 햇살이 내 눈빛 속에 열렸다. 내일은 기쁨과 슬픔이 같이하지만, 그건 생활의 일상일 뿐, 미움, 시기, 욕심, 절망, 분노같은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우리는 생명을 하찮게 보고 슬픔을 잊는 마음살에 돋아난 욕심의 잔은 비워내야한다. 눈 같이 맑은 생각과 의지는 햇살받아 번쩍이고 가슴엔 사랑과 열정의 뜨거운 피가 샘솟는 꿈을 꾼다. 이 소박한 믿음을 하늘에 기도하는 목적이다. 이제 내가 맞는 새해 첫날이 주는 선물로 새봄의 기쁨을 위해 내 손으로 꽃씨를 가꾸어 뜨락에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로 꽃피우리라 새해에는 이렇게 살고싶다.
박재형 작 晩秋의 가을은 이름만 남긴 채 찬서리는 낙엽을 덮었다. 孟冬은 맹랑하게 추위를 몰고 기승을 부린다. 겨울! 내가왔다 하듯이 추위에 노출된 몸과 마음이 얼어붙고 거리가 한산하게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다. 나무는 나무대로 추위를 이기려 두툼한 겁피로 무장하고 입파리를 떨구어 앙상한 가지만 달랑 남아 힘겨운 겨울나기를 시작한다. 윙윙 칼바람 매섭게 몰아치는 밤이면 사람들은 따뜻한 구둘장으로 하나 둘씩 모여 가족의 오붓한 노닥거림에 밤깊어 가는 줄 모른다. 12월은 잊을 수 없는 결혼 기념일과 생일이 있어 感興이 묻어있는 일화가 참 많아 다정다감한 달이다. 겨울하면 잊지 못할 추억들을 한 두가지는 모든 이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뜻한 방안에서 묵정 같은 추억을 만지작 만지작 가슴속에 숨을 고르며 부풀어 나올 기회 만을 기다린다. 고즈넉한 촌 동네 따뜻함과 온정이 넘쳐났던 고향집 마당의 감나무, 고향 하늘은 가슴속에 파란색과 붉은 홍시의 그림으로 채색되어 떠오른다. 저녁 햇살이 내려올 쯤이면 집집이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용트림하듯 하늘로 솟구치고 어둑어둑한 밤이 되면 옹기종기 사랑방에 모여앉아 음담패설과 여자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던 시절, 이웃집 다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