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작 한여름밤 열대야의 더위가 나이든 나를 더욱 애달프게 바라보는 것은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일까? 늘 내 곁에 있던 내 청춘, 젊은 날의 향기가 어제인 양 생생한데 그 늠늠한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내 젊음이 날 스쳤듯이 팔랑팔랑 나비처럼 구름처럼 순식간에 그렇게 스쳤다. 젊음은 한 여름 밤에 손님처럼 찾아온 여름밤의 꿈인가? 중년(노년)의 나이 세월의 깊이만큼 여유로움이 묻어있어 아름다워 보이는 나이다. 젊은 날처럼 풋풋하고 빳빳하지도 않지만 유순해 보이는 편안함이 간직한 나이다. 정신 없이 달려온 시간들... 문득 중년의 낮선 모습에 새삼 허무하고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반짝이던 검은 머리는 희뿌옇고 윤기없이 거칠다. 돋보기로 초점을 맞추며 읽어내리는 신문은 흐릿한 글씨들이 겹쳐온다. 당연하게 알고 살아온 세월이 허무하고 현실이 억울하기도 하여 나를 찾고자 하염없이 방황하는 나이... 현실을 잊고싶어 무작정 떠나고 싶다. 되돌릴 수 없는 젊은날의 아쉬움인가, 온 몸은 희망과 긍정의 열기로 가득차나 이룬 것 없는 현실에 사춘기 소년처럼 먹먹한 가슴은 어느새 고개를 떨군다. 이제 지난 삶에 연연하여 자신감을 잃어 체념하는 허물어진 내가
박재형 작 오늘 나는 바쁜 마음으로 시간을 보채면서 지내다가 날씨가 차가와지기에 문득 노랗고 붉은 낙엽이 생각났다. 떠나가는 세월을 잡을 순 없지만 가을의 뒷모습을 지켜 보고 싶었다. 그렇게 가을은 한마디 인사도 없이 떠났다. 그리고 낙엽마저 집어 삼킨 성깔머리 사나운 서리가 자리한다. 매정하게 떠나버린 가을을 싸늘히 식어가는 숲속에 묻고 화려했던 가을의 채취를 그려본다. 파란하늘! 강직함으로 포장된 것 같다. 하늘 향해 뻗어감을 자랑하는 대나무를 너무 부러워 하지 말아라. 울긋불긋 단풍이 계곡에 자리하고 그 속에서 마지막 열정과 열기를 내뿜음이 있어 좋다. 하지만, 가을 날씨는 호흡 속에 숨겨진 신선함이 있어 오히려 가을을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오늘! 못내 떨치지 못한 가을의 끝자락에서 맑디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 마시며 얽히고 섥힌 실타래 같은 세상살이도 저 하늘 닮길 바라며 쳐다본다. 가을밤의 등불! 아무도 없지만 빛을 발하는 등불이 좋다. 어두움보다는 편안함이 함께 하기에 사랑한다. 가족처럼 우리와 함께 하고 가을밤 어둠을 밝히던 저 등불도 심지를 태우며 제 몸체을 흘러내리던 어제 밤, 미처 다 타지 못한 촛농과 끄스럼이 우리에게
박재형 작 얼마나 보고팠던가! 얼마나 그리웠던가! 이 추운 겨울 아득한 만남이 이루어 지는 첫눈. 어린아이의 순진한 눈길 속에도, 어른의 깊은 슬픔의 눈동자 속에도 사뿐이 내려안는 희망이다. 온통 하얗게 물들이는 첫눈의 감회는 마음껏 한없이 노래할 수는 없지만 겨울 오래도록 이어간다. 첫눈 내리는 날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길로 나가 포근히 안겨드는 그들을 받아 가슴 속 깊이 스며들도록 여기 저기, 이산 저산에 말하여 줍니다. 그리고 첫눈의 사랑은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 瑞雪(서설)로 내리는 축복의 눈, 하얀 웃음꽃이 내리는 첫눈은 사랑이다. 그대를 향해 열려있는 마음의 길을 따라 저멀리 세상 끝까지 아주 천천히 걸어본다. 가다보면 그대 마음이 불빛으로 새어나오는 아담한 창문의 카페에서 두근거리는 손길로 또 한 세상의 문을 열고,미소도 고운 불빛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장작 난로가 귓불 간지럽게 더운 숨결을 훈훈하게 껴안는 동안 지나온 삶은 하얀 세상의 경이로운 정경만 보게 되리라. 내리는 눈은 또 지난 세월을 잘 가라며, 엇갈린 세상을 접고 또 접어 동면하는 삼라만상 돌아보면 모두 피폐하고 쓸쓸하고 허전하다. 하얀 눈송이는 가난한 마음 위로 맑은 꽃으로
박재형 작 겨울 창밖, 빗소리에 인기척인 듯 창문을 여니 설렁한 바람하나 없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 춥지 않는 날씨에 색상이 뚜렷한 갈색들의 절묘한 조화와 촉촉이 젖은 대지의 사물은 눈 앞에 펼쳐져 풍경을 더 진하게한다. 계절이 바뀌는 송년의 길목, 차분해지는 마음에 내린 비는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을 다시 여는 그리움처럼 방울방울 맺힌다. 시간이 갈수록 도시의 회색빛 네온사인에 비는 굵어졌다. 아스팔트 도로 위 포장마차의 연약한 빛을 따라 채워지는 가난한 자들의 꿈, 작은 아픔은 씁쓸한 미소를 담고 겨울비는 빛을 따라 내린다. 비 내리는 길 위에 회색빛 미소가 스며드는 이 슬픔은 무엇인가? 이루지 못한 꿈인가? 애타는 마음에 멈춰진 시간처럼, 빈가슴은 사무친 그리움과 쓸쓸함이 다가온다. 한겨울에 눈은 왜 비로 변했을까? 그리움이 변해 미움이 되어 내게 멀리 떠나간 사람처럼 사랑의 행복한 순간들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가? 겨울비 내리는 가로등 빛 불빛 속을 서둘러서 달리면 사랑이 찾아질까? 못미더운 생각으로 가득차, 나는 어디있나 싶다. 그러나 지금은 내 곁에 오늘이 있다. 지난 날을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의 빈자리가 있어 배회를 견뎌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