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 26일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켜 교과서를 지면도서 또는 전자도서로 한정하도록 규정하여, AI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 정의에서 제외하고 '교육자료'로 분류하였다.
개정안에서 밝힌 입법 배경과 문제
개정안은 입법 배경으로 교사,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다수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 절차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입법 과정에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나 공론화 절차 없이 국회 의석수가 다수인 점을 이용하여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민주당의 이름으로 민주적 '절차성'만 강조하여 실질적인 민주적 협의 과정은 무시한 행태로 볼 수 있다.
또한 '교육제도의 법률주의'를 언급했는데, 「교육제도 법률주의에 따른 교과서제도 쟁점 고찰」(한국교육학술정보원 정순원, 대한교육법학회 2020)에서 설명하는 법치에 근거하여 교육의 안정성과 예측성, 그리고 자주성 등을 담보하려는 것과는 대치된다. 교과서의 개념적 정의가 아닌 형식이나 형태를 이미 개발된지 시대가 한참 지난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 회귀시켜 규정지음으로써 안정성과 예측성, 자주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제를 통해 발전과 혁신을 저해하는 것이다.
공교육으로의 교육 불평등 확장
이번 법안은 고민정, 문정복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기존 민주당의 교육 정책 기조와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사교육을 교육 불평등의 요소로 지적하며 사교육 철폐, 학교 평준화, 학교 서열화 금지 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민주당의 교육 정책 철학에 바탕할 때, 학교 간 교육 격차 심화, 경제적 격차에 따른 교육 불평등,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 주도 교육 혁신 저해 등 오히려 교육 불평등 문제를 사교육에서 공교육으로 확장하고 있다.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AI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함으로써 정책적 의무지원이 어렵도록 만들었고, 이에 따라 각급 학교에서 AI디지털교과서의 교육자료로의 채택 여부에 따라 근본적으로 학교 간 교육 격차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AI디지털교과서는 기술적 측면이나 온라인으로 작동해야 하는 운영 형태의 특성상 기존 지면 교과서보다 구입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AI디지털교과서 채택 여부에 따라 학교 간 교육 내용과 질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 높은 구입 비용으로 인해 경제적 여건에 따른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이는 민주당이 그토록 반대해오던 교육 분야에서의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으며, 결국 교육의 평등성을 저해하고, 특정 학교나 지역의 학생들이 AI 디지털 교과서를 통한 교육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될 위험이 있다. 민주당이 추구해온 교육의 평등성과 접근성의 가치를 고려할 때, 이번 법안은 그 기본 이념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 세계적 추세에 역행
OECD에 따르면 현재 정보사회에서 지식기반산업으로 급속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교육 분야 또한 디지털 전환이 세계적인 흐름이며, 이는 단순히 지면 도서를 전자 형태로 변환하는 것이 아닌, AI 등 디지털 기술 도입을 통한 실질적인 디지털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 법안은 교과서의 본질적 기능이나 역할에 대한 정의 대신, 단순히 형태(도서와 전자책)로 제한함으로써,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에서 제외하였다.
기존 정부와 교육부가 고수해오던 'AI디지털교과서 2025년 도입'에 대해서는 개인의 교육 철학을 막론하고 '시기가 너무 이르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시범 학교 선정 등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치도록 방향을 설정해야 할 일이지, 이처럼 교과서의 형태를 이미 시대를 지나친 산업사회(지면)와 정보화사회(전자책)의 형태로 한정지어, 교육 형태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저해하고 가로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교과서의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개별 학교가 개별 개발사에 발주하는 형태는 자원의 집중을 저해하여 운용 비용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AI디지털교과서의 개발·운영 조차 불투명해진다. 이는 곧 국제적 교육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교육계의 반응
교육부는 이 법안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며,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재의요구를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교사들의 54%는 AI디지털교과서 도입이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육 현장에서 AI디지털교과서의 잠재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교원조합(대한교조)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대한교조는 입장문을 통해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단순한 교육자료로 전락시키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분노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한 "교과서로서의 지위 상실은 국가자원 낭비이면서 신뢰성 보장의 파괴"라며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대한교조는 이 법안이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AI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지위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개정안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
이러한 문제점들을 고려할 때, AI디지털교과서를 완전히 배제하기보다는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성을 검증하고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AI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의 한 형태로 인정하되, 도입 시기와 방식에 유연성을 부여하고, 법적 지위와 인프라 구축을 재검토하는 등의 대안적 접근이 요구된다. 이는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교육 혁신을 촉진하고, 교육 격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법안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입법 과정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 법안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향후 교육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반드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전문가 의견 수렴이 선행되어야 한다. AI디지털교과서의 잠재적 이점과 위험을 균형 있게 고려하여,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인 접근을 통해 교육의 디지털 전환에 동참하며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